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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Dec 27. 2021

세상에 이런 글이!

그가 말하는 '긍정'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 '생활의 달인'을 제법 진지하게 대하는 시청자이다. 꼬박꼬박 챙겨보진 않더라도 그 프로그램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헐겁게 여기진 않는다. 사실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을 정하기 전까지는 그냥 보기 편한 프로그램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의 시청 태도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저렇게까지 해서 음식을 만든다고?


두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새삼 놀란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있다. 그 '개성'은 '행복'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자기 자신만이 살 수 있는 삶을 산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의 삶 말이다. 그들에게는 정해진 방식이 없다. 스스로 찾은 방법과 규칙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킨다. '생활의 달인'에 나온 달인들은 대체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과정이 늘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복잡하고, 힘들어 보인다. 어떤 달인은 자신의 노하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에 알려줘도 그대로 따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다부진 몸짓에서 느껴진다. 나는 그들이 내놓은 결과보다 과정에 언제나 감탄한다.

나는 두 프로그램에서 공통점을 두 가지 발견했다. 첫 번째, 프로그램에 나온 그들은 정확한 부분에 확실히 몰입하고 꾸준히 노력한다. 그들에게 대강은 없다. 몰입하는 시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며, 이미 해냈지만 다른 것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들 모두 장수 프로그램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는 1998년 5월 21일부터, '생활의 달인'은 2005년 4월 25일부터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프로그램이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특별해 보이는 그들이 우리 삶의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그렇게 조용히 가꾸어 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1153회에 나온 한 발 래프팅 강사 이주영 씨 편을 보고 나는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8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그는 왼쪽 무릎 밑으로 의족을 하고 있다. 그런 그의 직업은 놀랍게도 한 발 래프팅 강사다. 한 다리로 수영을 하기 위해 첫걸음마부터 다시 배웠다는 이주영 씨의 노력은 가히 존경스럽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10대 때부터 혼자 생계를 유지해왔던 그에게 현실은 너무 가혹해 보인다. 세상을 원망한다 해도, 현실을 탓한다 해도 그럴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의 삶을 인정한다. 그는 래프팅, 운전, 사이클까지 자신이 해왔던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간다. 오래된 의족을 억지로 사용하면서도 그는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일들을 담담하게 해낸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삶을 긍정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운다.



'너 긍정적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긍정적인 게 뭔데?' 그랬더니
'너는 어떻게 이렇게 밝게 사냐?'
저 안 밝아요. 그냥 인정하고 사는 거예요.
내 삶에 맞춰서 인정하는 게 그게 긍정이지.
안 좋은 거를 좋게 생각하면 망각이다. 망상이고.
그거는 그거야말로 부정이다.
그래서 저는 그냥 지금의 제 삶을 인정을 하고 살기 시작하니까 좀 좋아지는 거 같아요.

- <세상에 이런 일이> 한발 래프팅 강서 김주영 씨 인터뷰 -


나는 20대 초반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을 싫어했다. 현실이 진흙탕이라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질척거리기만 했기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얄미워질 정도였다. '당신은 내가 아니니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 뿐이야.'라고 단정 지었다. 그 시절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내 삶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인정하기보다는 회피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김주영 씨도 처음부터 자신의 삶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저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견뎌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이런 일이', '생활의 달인'에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가 봐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은 소중하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삶,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빛나게 만드는 법을 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긍정'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들 긍정적인 사람을 '밝은 사람'과 동일시한다. 그는 자신이 밝지 않다고 말한다. 그냥 인정하고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삶에 맞춰서 인정하는 삶을 긍정이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을, 나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세상이 이런 글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하나 더 찾아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들을 나는 꾸준히 쓰고 싶다. 지금의 나는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계속 쓰다 보면 그의 말처럼 좀 좋아지지 않을까.



* 참고 : 세상에 이런 일이 1153 -  발의 래프팅 강사, 이주영(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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