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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an 31. 2022

감성과 안목

섬세한 마음의 결

얼마 전 SNS에서 눈 내리는 사진 아래 ‘예쁜 쓰레기가 내린다’는 표현을 보았다. 작은 눈송이가 우아하게 떨어지는 영상 아래 쓴 문장이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 카페에서 올린 글이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카페라서 한 번은 가봐야지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 표현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그 공간은 분명 세련된 것들로 가득 차 있겠지만 나는 그곳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아 졌다. 


그런 곳에 정말 감성이 있을까?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누군가에게는 예쁜 쓰레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자신의 카페 앞에 눈이 펑펑 내리니 치울 생각을 하면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솔직히 힘들고 귀찮은 일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을, 그런 정도의 안목은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감성이라는 건 뭘까. ‘감성’의 사전적 의미는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이다. 그렇다면 느끼는 대상은 나다.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안목이 필요하다. 안목은 쉽게 체득되지 않는다. 수많은 배움과 경험이 그 바탕이 된다. 또한 그 바탕에 내 생각을 더해야 한다.


나는 감성 이전에 안목을 갖고 싶다. 그것은 새로운 것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낡은 것에만 있지도 않다. 우리가 보는 감성은 결국 안목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온다. 안목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세련된 공간에서 우리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우리는 '카페 투어'라는 말을 붙여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서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 공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아이템들도 있다. 이를테면 'LEON' 표지의 노트, 라탄 의자, 값비싼 핸드워시 등이 그렇다. 집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우리는 카페에서 체험한다. 

나도 동네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근사한 카페가 많다. 그중에서 하나를 소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동인천 골목 어디쯤에 있는 카페 한 곳을 소개하고 싶다. (카페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이미 유명해서 평일에도 웨이팅이 있다.) 내가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그곳에는 자신들만의 원칙이 있다. 그곳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드립 커피를 제공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커피 맛도 훌륭하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의 소비가 아깝게 느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가격이 저렴한 탓에 한잔 더 마시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다. 둘째, 그곳에는 자신들만의 디자인이 있다. 커피를 고를 때와 제공받을 때, 우리는 그곳만의 커피 소개 카드를 만날 수 있다. 그 카드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있는데 그것은 커피뿐만 아니라 머무는 공간과도 이어진다. 어디에서나 있는 아이템으로 채웠다기보다는 자신들만의 안목으로 시각적 통일성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여겨진다. 셋째, 그곳은 계단에서부터 향기와 음악이 흐른다. 카페는 2층에 있는데 1층 계단을 오를 때부터 특유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문을 열면 적절하게 흐르는 음악이 그 향기와 잘 어우러진다. 그것은 화장실까지도 이어진다. 향기와 커피 그리고 음악이 한데 뒤섞여서,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완성된다.

그 카페는 자신들이 세운 원칙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공간과 맛을 제공한다. 신기하게도 그 카페에 가면 무엇이라도 쓸 수 있는 상태로 변환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순간이 좋다. 그곳에 가기로 결심한 날에는 꼭 잡지나 두꺼운 책을 가지고 나간다.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에세이나 소설책보다는 잡지나 전문 서적이 그곳과 어울린다. 

나는 색다른 무드를 읽어낼 수 있는 장소가 좋다. 우리가 돈을 내고 전시를 관람하는 이유도 그런 것을 느끼기 위해서 아닐까. 그런 카페를 찾아내면, 속으로 '나만 알고 싶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목이 있는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이겨낼 수 있으랴.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여섯 테이블 정도면 만석이 되는 그 카페는 주말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감성은 무엇일까? 적어도 눈을 보고 예쁜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장소에는 감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쓰는 언어가 나를 만든다. 곁에 두는 이가 나를 만든다. 머무는 공간이 나를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흉내 내는 건 안목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보는 것과 먹는 것, 그것을 통해 사유하는 동안 우리의 안목과 감성은 자란다. 감성을 갖고 싶다면, 섬세한 마음의 결을 늘 유지해야 한다. 전체와 부분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감성과 안목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그 무엇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것이 녹아 없어지는 눈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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