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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비가 오락가락이다. 비가 계속 오려나 싶으면 그치고, 그쳤나 싶으면 다시 내리길 반복하고 있다. 볼 일이 있어 밖에 나갔더니 순식간에 후덥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마스크 안이 후끈해진다. 뒷덜미에 닿은 머리카락이 질척거리기 시작한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일단 마스크를 내리고, 손목에 감긴 머리끈으로 치렁거리는 머리카락을 묶었다. 머리를 풀고 싶은데 어쩔 수 없다. 창문을 활짝 열고, 커튼을 거둔 것처럼 목덜미에 바람이 분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을 텐데 우산 없이 나온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점심시간이라고 해봤자 고작 한 시간, 그 사이 그친 줄만 알았던 빗줄기는 어느새 굵어져 있다. 그들은 마트 차양막 아래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것을 지켜보며, 담배를 태운다. 담배를 다 피운 뒤에는 비를 맞고 뛰어 갈지, 비가 그치기를 좀 더 기다릴지, 그들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걸을 때마다 발등에 구멍이 여러 개 난 여름 신발 안쪽으로 물이 들어온다. '찰랑'이 아닌 약간 스민 정도의 물이 발가락에 닿을 때마다 불편한 기분이 지난다. 흠뻑 젖어버리면 오히려 신경이 덜 쓰이는데 애매한 정도라면 그쪽으로 신경이 쏠린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그 방향이 내가 보는 앞이다. 내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걷고 있다. 그 사람에게는 나의 등 뒤가 앞이다. 어디를 향해 걷느냐에 따라 앞은 달라진다. 점심시간이면 늘 붐비는 짜장면집 앞에도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다. 작업복을 입은 여자가 이쑤시개로 입안을 정리하며, 동료들을 기다린다. 같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도 하나 둘 그 여자 옆에 선다. 그들은 모두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손에 우산을 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왔을까. 왜 우산이 없지. 잠깐이니까 맞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또다시 걷는다.
과일가게 앞, 맨 앞에 나와있는 과일이 비를 맞고 있다. 주인은 애초에 과일이 비를 맞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아오리의 표면에 떨어진 빗물이 눈에 거슬린다. 아오리 옆에는 자두처럼 생겼지만 이름은 다른 과일도 있다. 그 뒤로는 복숭아, 또 옆으로는 고추와 양파가 보인다. 집에 돌아갈 때 아오리를 사야지 다짐한다. 여름에는 아오리를 꼭 사고 싶다. 여름의 빛깔을 머금고 있는 아오리를 사면 나의 여름도 그런 빛깔로 물드는 것만 같다. 연두와 초록의 어디쯤, 여름의 아오리는 언제나 내 이목을 끌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익숙한 길로 걷다가 먼길로 돌아갈 뻔했다. 평소에는 좀 돌아가도 괜찮지만 오늘은 안 된다. 비도 오고, 아이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동인천 북광장, 저기 오른쪽 지하상가로 가면 된다. 지하상가 입구 왼쪽에 앉은 두 명의 남자가 바닥에 붙어 있다시피 자세를 흩트리고 앉아 있다. 앉아 있는 건지 누워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도 않는다. 그냥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쪽 길이 가장 빠르고 편리하다. 그쪽으로 향한 내 몸은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방향을 자연스럽게 바꾼다. 대낮에 어둠을 뒤집어쓴 얼굴을 한 남자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다. 내가 그곳을 지나칠 때 그 남자와 마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빠르게 다른 선택을 했다.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 역사를 가로질러 가면 된다. 방향을 바꾸자마자 사람들의 얼굴이 여럿 시선에 걸린다. 여자 두 명이 다소 거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어슬렁 걷고 있다. 양말에 슬리퍼를 신은 그들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담배만 피우면 된다는 표정이다. 오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비 오는 날 담배는 맛있어 보인다.
동인천역 개찰구 근처를 지난다. 그곳이라고 특별히 나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시멘트 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주의를 기울여 걷지 않으면 발바닥이 젖을 정도다. 몇 년째 공사 중인 그 지하상가 중간쯤에는 늘 노숙자가 있다. 오늘 역시 그렇다. 겨울 옷차림으로 여름을 나는 그 남자를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왜 그렇게 살아가는 건지, 인간의 삶이 왜 그래야 하는지. 그런 생각은 늘 잠깐이다. 그 남자는 늘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고, 거기 존재할 뿐이다. 그 남자를 지나고, 또 다른 남자가 보인다. 한쪽만 맨발이라 왜 그런가 살펴본다. 남자의 오른쪽 뺨에 닿아 있는 신발로 의문이 쉽게 풀린다. 베개가 없으면 잠이 들기 어려운 사람인가 보다. 길바닥에서 잘 수는 있어도 베개가 없으면 곤란한 그 남자는 꿈속에서 신발을 신고 있을까. 새까만 발을 어쩌지 못하고 잠든 남자는 깨어나면 무얼 할까. 나는 그곳을 지나친다.
계단을 다 올라가기 전에 우산을 편다. 오늘 목적지는 카페다. 동네에서 남편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다. 그곳에서 선물용 원두를 사고, 커피를 한잔을 텀블러에 담아올 계획을 나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세웠다. 미리 알아본 원두를 주문하고, 텀블러를 카페 직원에게 건넸다. 여유로운 음악이 흐르고, 그곳에서만 나는 특유한 향이 방금 바깥에서 머금고 온 동인천의 여름 냄새를 포근히 감싸 안는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에 갈까. 비 오는 번거롭게 여기까지 왔으니 한 잔 마셔도 괜찮지 않나. 역시 어렵다. 집에 혼자 있는 아이가 걸린다. 텀블러에 담아 가는 커피를 마시면 되니까 하면서 엽서를 두 장을 고른다. 여름과 어울리는 엽서 두 장이다. 한 장은 선물하고, 한 장은 내가 가지기로 다짐하며 포장된 원두와 텀블러를 챙긴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마셔봐야 할 커피를 마음속에 새기며, 내려오는 계단에서 다시 음악을 재생시킨다. 빗소리와 음악이 적절히 어우러져서일까. 익숙한 풍경이 낭만을 남기고 등 뒤로 사라진다. 이 십 대 때 아르바이트했던 카페가 보인다. 그 카페 아래 떡볶이집을 지나는데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든 할머니가 보인다. 떡볶이집 할머니는 20년 전에도 할머니였는데 지금도 할머니다. 미리 늙어버린 건지 지금과 그때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내게 언제나 친절했던 그녀는 지금도 나를 보면 안부를 묻곤 한다. 잘 지내나, 동생은, 아이는 몇 살이고.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가진 않아서 얼굴을 들이밀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칠 때가 더 많다. 할머니가 잠들어서 그런지 젊은 남자가 그 앞에 그대로 서있다. 할머니가 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지, 무엇을 주문할까 고민하는 중인지, 알 수 없다.
이쪽 길이 아니다. 습관적으로 걷는 방향으로 가다가 발걸음을 또 멈췄다. 그쪽으로 가다 보면 지하상가 계단을 지나야 하는데 그게 문제다. 지하상가 식당과 마주 보고 있는 화장실, 그 두 곳의 냄새가 오묘하게 섞여 나는 냄새, 그 냄새를 마시면 아무리 맛있게 뭘 먹었더라도 기분이 상한다. 오래된 곰팡이와 새롭게 생긴 악취들이 대결을 하듯이 그곳을 맴돈다. 카페에서 맡은 냄새를 그 냄새로 덮어쓰기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 길로 가면 아까 내가 애써 피했던 노숙자를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산을 펴면서 시선을 앞에만 두면 3초 안에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하며 나는 과일가게를 향해 걸었다. 신호가 나를 기다린 것처럼 바뀌고, 나는 비 맞은 아오리 앞에 섰다. 가게 안에서 휴대폰을 보던 아저씨가 나를 발견했고, 나는 아오리를 한 바구니 달라고 말했다. 만 원을 냈더니 아저씨 주머니에서 꽤 두툼한 돈뭉치가 나온다. 거스름돈으로 오천 원짜리 지폐를 받고 분명히 들리도록 깍듯이 인사를 한다. 자두 같이 생긴 과일에 대해 물어볼까 생각하던 것을 그만두고 나는 또 앞으로 걷는다. 계속 비가 온다. 아파트에 다다르자 비를 쫄딱 맞은 아파트가 저대로 괜찮을까 걱정이 된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가. 잘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볕이 쨍하고 나타나 젖은 수건을 말리듯 젖은 아파트를 바짝 말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뽀송한 얼굴로 다시 마주할 날이 언제일까.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마트와 짜장면집 차양막 아래서 비를 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저런 문장들을 떠올렸다. 비 오는 날 태우는 담배는 맛있어 보인다. 우리는 모두 앞으로 걷고 있다. 나를 마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늘 다니는 동네에서 보게 되는 풍경을 통해 머리 위로 튀어나오는 단어와 문장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웃음이 났다. 나는 이제 걸으면서도 글을 쓰는구나, 글을 쓰고 싶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가 오늘 외출해서 본 것들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이 완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