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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l 04. 2022

구토와 쓰기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말을 참지 못해서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다 말할 수는 없다. 내뱉어지는 말들은 보통 일상적인 것이고, 글로 쓰는 말들은 당장 내뱉어지기에 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무리가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말들을 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요구된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글을 쓰는 행위가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해놓고, 우물쭈물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혼자 남겨지면 자기 고백을 하는 꼴이란. 무슨 대단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구는 모습이 그려져서 불편하달까. 

마음이 불편할수록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아진다. 마음에 감정이 가득 차면 부풀어 오른 말들을 다 소화해낼 수 없어 토해내듯 글자를 쏟아낸다. 바닥에 쏟아진 글자를 주워 담아 나는 문장을 쓴다. 생각한 것을 말로 전달하기보다 글로 쓰는 것이 편하다. 글을 지우지 않는 한 어디에라도 남겨진다는 의미에서 안전한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다시 다듬어진 말들은 그냥 내뱉어진 말보다 한결 괜찮게 느껴진다. 


어떤 말은 생각보다 먼저 내뱉어진다.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아 뒤죽박죽이 되기 일쑤다. 말은 나를 변호하느라 바쁘다. 자기반성으로 위장한 자기변호, 타인을 위로한답시고 토해내는 자기 위안. 구차한 말들이 쉬지 않고 등장한다. 막장 드라마의 예상할 수 없는 전개를 보며 쏟아지는 야유처럼, 아무렇게나 쏟아진 말들이 내 발 밑에 떨어진다. 


그러게 생각 좀 하고 말하지.


어떤 말들은 컵에 가득 찬 물처럼 표면을 아슬아슬하게 찰랑이며 흘러나온다. 컵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면 찰랑거리는 물을 흘릴 수밖에 없듯이 어떤 말들은 그렇게 입 밖으로 나와버린다. 그 말들은 몸의 일부를 적신다. 너무 많은 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결국 무엇을 말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제대로 말할 수 없으면서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나는 너무 겉과 속이 다른 게 아닐까. 구차한 자기변명과 위안을 위해 이렇게 수많은 단어를 토해내도 되는 걸까. 


어떤 사람은 자기 연민이 없는 글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 자기 연민이 없는 사람이 타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자기 자신에게 가질 수 없는 감정을 타인에게 줄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도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있나. 연민이 없는 글이 좋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 연민이 느껴지는 글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때때로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살아있기에 견뎌야만 하는 수많은 일들이 가혹하기 느껴지기도 한다. 불공평한 운명을 온몸으로 맞서는 인간의 생애, 일곱 번 넘어져도 또 일어나야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숙명, 살아있기에 살아내야 하는 우리의 오늘, 나는 그런 것들에 연민을 느낀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 수많은 것들을 지나 그 끝에 남아있는 죽음에서 나는 삶이 무엇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예상할 수 없다 해도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쓰고 싶다. 


궁금한 것이 많아질수록 쓰고 싶은 글들이 많아진다. 나의 질문에 누가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나는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이 외로워 빈 화면에 단어를 채운다. 질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질문을 토해낸다. 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데 질문할 필요가 있는가. 누군가 내게 그것을 묻는다면 나는 '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정답이 없는 답을 찾는 것이, 목적지가 없는 삶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삶에는 각자가 부여한 의미가 있다. 참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 구토처럼 나의 단어들이 쓸모없다고 누군가 말한다 해도 지금은 멈추고 싶지 않다. 그것조차 내게 의미가 있다고, 나는 토하듯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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