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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자신

오만한 사람이 쟁반에 내어주는 불편함

by 젼정
오만(傲慢) :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
자신(自信) :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거나 어떤 일이 꼭 그렇게 되리라는 데 대하여 스스로 굳게 믿음. 또는 그런 믿음.

네이버 국어사전


우리는 오만(傲慢)과 자신(自信)을 착각하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을 보여주기 좋은 시대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들에 열광한다. 그럴듯한 장소와 취향으로 뒤범벅된 SNS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이 경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쉽게 아는 척할 수는 있지만 정말 아는 것은 없는 빈 껍데기를 품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자신감과 오만함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오만한 사람은 태도나 행동에 거침이 없다. 거침없이 굴다 보니 상대를 쉽게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을 불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오만'이라는 단어를 뒤로 숨겨 쓰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상대가 나를 인정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들은 오만해지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거로, 나를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에 갇혀 오만함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지 않아도 자신감은 가질 수 있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고개 숙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유지하는 꼿꼿함이다. 오만한 사람이 쟁반에 내어주는 불편함을 나는 거절하고 싶다. 자신감으로 포장한 그럴듯한 문장도 읽고 싶지 않다. 포장은 결국 버려진다. 무엇이 남는가.


겸손한 태도보다 자신감 있는 태도가 대우받는 시대에 살다 보면 자주 혼란스럽다. 불편한 것을 대놓고 불편해하는 방식이 쿨하긴 해도, 쉽긴 해도, 마냥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여전히 그 방식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편해지기 위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어도 되는가. 실제로 그 방법을 쓰는 사람들은 배려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다.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방법을 쓴다. 배려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일수록 온갖 일들에 배려를 요구한다. 요구한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턱을 삐딱하게 쳐들고 그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요구한 것을 내놓으라고, 솔직한 사람이라서 너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니 고마워하라고.


아니, 전혀 고맙지 않다.


그런 일에 '자신'이나 '솔직'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상대의 감정과 상관없이 있는 말을 다 쏟아내는 것이 자신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가. 마음속에 있는 말을 여과 없이 다하는 것이 솔직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어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사적으로 소유한 언어에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내뱉는 상대가 있을 때는 그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판단 없이 나오는 말들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나는 자꾸 불편해진다.

내가 나를 인정하기 위해 상대를 밟고 가는 방식에 질린다.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내 말이 맞기 위해 틀리다고 해야만 하는가.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하더라도 글을 쓴 사람이 오만하다고 느껴지면 나는 그 작가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글은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만함이 느껴지는 글은 아무리 대단해도 읽고 싶지 않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오만,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한 믿음에서 시작된 그릇된 자신, 오만과 자신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싶다. 그런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로 다짐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주로 상대가 가진 겸손한 태도에서 자신감을 확인한다. 겸손한 사람일수록 자신감이 없어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감이 실제로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겸손한 사람이 가진 자신감은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겸손한 사람이 가진 자신은 언제나 더 큰 가능성을 열어둔다.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자신도 존중받아 마땅함을 말한다. 말하지 않고도 말해지는 겸손, 그런 결이 느껴지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오만함으로 상대를 우습게 만드는 사람들을 안다. 그들에게 내가 쓰는 이 글은 아마 좀 야비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나는 오만한 사람이 싫다. 오만한 사람을 배려해줄 생각도 없다. 시대가 오만과 자신의 세계 중간쯤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환영한다 해도, 나는 그 길로 가고 싶지 않다. 대놓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박수 쳐줄 마음이 내게는 없다. 그래도 박수가 꼭 필요하다면 자신감으로 위장한 오만이라는 단어에게 보내주겠다.


오만하지 않은 사람이 오만한 사람을 좋아할 리 없다. 오만하지 않은 사람은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만해져야만 자신감이 생긴다면 그 자신감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위해 나를 바꾸지 않을 자신, 한없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오늘보다 내일 나아질 자신, 내게는 그런 자신이 있다. 당신은 오만과 자신의 어디쯤에 있는가. 나는 그것을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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