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쓸 때 거짓말을 쓰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거짓말을 만들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글이기에 다른 글보다 형식에서 자유로운 에세이는 쓰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람의 생각이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세이를 쓰는 건 모험이기도 하다. 오늘 쓴 글을 내일 부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 달 후, 몇 년 후에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에세이를 쉽게 쓰기가 어렵다. 오늘 마냥 좋게 포장된 마음이 내일 자고 일어나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오염되는 건 너무 흔한 일이 아닌가. 신념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신념이 죽을 때까지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에세이를 쓰는 건 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유명하지 않다면 그런 부담은 덜 할 테지만 에세이를 쓰면서 사람들이 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흔치 않을 것이다.
변덕이 심한 나의 마음은 자주 이랬다 저랬다 한다. 어떤 날에는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앞으로의 모든 날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하다가, 어떤 날에는 밀려온 먹구름을 보며 당장 지구에 종말이 오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조여오기도 한다. 그날 겪은 감정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나의 에세이는 변덕쟁이 같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너그럽게 마음을 풀어헤쳐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나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정말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다. 뭐가 그렇게 어려우냐고, 뭐가 그렇게 복잡한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다. 그만큼 마음은 단순하지가 않다. 단순하지 않기에 에세이는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손을 내민다.
에세이를 쓸 때 나는 스스로 발가벗겨진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마음을 술술 털어놓는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 그렇게 되길 원한다. 나는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늘 측면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타인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편했다. 어딜 가든지 주목받는 것이 싫었고, 지금도 싫다. 그렇다고 내가 타인의 들러리로 살아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나는 그들이 내 이야기 주인공이라고 여긴다. 각자의 무대에서 삶을 만들어가는 타인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 말로는 남의 인생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마음은 늘 타인의 삶이 어떤지 궁금해하고 있다. 그것을 보아야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세이를 쓰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탐구한다. 어느 때보다 나와 타인을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도 온전히 알아낼 수 없는 나와 타인의 존재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다양한 경우의 수처럼 마음은 각기 다른 문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문은 늘 열려 있고, 어떤 문은 늘 굳게 닫혀 있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의 문을 열고 닫으며 자기 자신의 기분을 느낀다. 타인을 얼마만큼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내가 열어놓은 문으로 어떤 사람이 걸어 들어오는지 지켜보는 일, 타인이 닫은 문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는 일, 타인의 문으로 또 다른 타인이 침입하는 것을 관찰하는 일, 에세이는 그런 게 아닐까.
보잘것 없어진다 해도 솔직해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에세이를 쓴다. 그런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봐 주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언젠가 내가 쓴 글로 인해 거짓말쟁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에세이를 쓴다. 참 이상한 마음이다. 에세이를 쓰는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