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라 이상해

by 젼정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몸도 마음도 대체로 정상인 내가 무엇을 써서 사람들에게 내놓을 수 있을지 자꾸 망설이게 된다. 다양한 감정을 고루 느끼며 살아가는 나의 일상은 평범하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끔 툭 튀어나오는 모난 마음, 그것이 이상하다면 좀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그러다 보면 나는 자꾸 움츠러든다.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하면서도 그렇다. 내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재능 앞에서 어쩐지 주눅이 든다. 어떤 이들은 그런 것들을 보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하는데 나는 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나오는 벤자민 버튼(브레드 피트)처럼 젊어지다 못해 더 작아져 버리는 걸까. 멋지고, 대단하고,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눈에 띄지 않는 나라는 사람의 일상을 쓸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아서 어느새 기분이 씁쓸해진다.


시작은 커피 드리퍼 위에 놓인 신선한 원두였는데 끝은 다시 물을 부어도 소용없는 원두가 된 느낌이다. 필터에 걸러진 원두 찌꺼기는 거기 그대로 있다. 매일 나는 마음에 물을 붓는다. 내 마음을 걸려 완성된 것과 남겨진 것, 그것을 지켜보는 일상을 나는 쓰고 있다


정상이라 이상해.


그런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 그런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때로는 비정상으로 보이고 싶을 때도 있다.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증거를 만들고 싶다. 유치하지만 그런 방법이라도 이용해서라도 내가 다르게 쓸 것이라는 증거를 조작하고 싶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지내는 일상도 특별하지 않다. 너무 좋다가 너무 밉고, 다정했다가 이내 싸늘해지기를 반복하는 관계 속에 내가 존재할 뿐이다.


나는 모두에게 정상일까? 나는 내가 모두에게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라는 책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모두 다르게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에게 다른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죽고 나서야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녀는 살아생전 자신의 재능을 어딘가에 확인받고자 노력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의 삶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추측되는데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녀가 전혀 다른 인물로 설명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는 그저 나인데 각각의 타자에게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아무리 내 기준을 가지고 일관적인 태도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인생은 내가 그린 대로 그려지지 않고, 그려진 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남이 나를 어떻게 봐주길 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말 어떤 형태인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관점으로 나를 보는 것이 옳은지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그대로 본다 해도 타인의 관점은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정상인지 무엇이 비정상인지, 우리는 수많은 잣대로 그것을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정상이 되고 싶은 걸까? 지극히 정상인 사람이 쓰는 평범한 글을 사람들이 봐줄까? 그 부분에서 나는 자주 초조함을 느낀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코너에 몰린 사람처럼 난처한 표정을 짓곤 한다.


나는 내가 너무 정상이라 이상하다. 바닥까지 가라앉은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는다. 속상하고 억울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의 평균치 감정에 도달해 있다. 기대감으로 들뜬 마음도, 기쁜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차분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준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도, 별 것도 아닌 일에 히죽거리며 웃을 수 있는 나의 마음은 이상해졌다가도 늘 다시 괜찮아진다. 이상한 일이다. 마음이 정상으로 되돌아가려 부단히 노력하는 일은. 마치 내가 내부의 나를 조정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용히 타이르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마음에 물을 붓는다. 뜨끈해진 마음이 들썩거린다. 내가 원하는 온도에서 남겨진 것들을 적는다. 나는 정상이다.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내밀 수 있는 건 마음 깊숙이 담아두었던 이런 말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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