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의 선택적 우려

by 젼정

"제발 멈추면 일어나세요."


버스기사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 말은 흡사 억지로 무릎을 꿇고 있는 듯 보였다. 반복되는 애원 탓인지 버스기사의 말에는 짜증과 지친 기색이 동시에 드러났다. 버스기사가 요구한 '멈추면 일어나세요'라는 말이 처음에는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간에 버스를 탄 내게는 그 말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금방 달라졌다. 버스기사가 그 말을 처음 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매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그 말이 승객에게 망설임 없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버스기사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승객에게 던지는, 그런 모양새로 말했다. 승객은 그 말투가 자신을 배려해서 한 말인지, 버스기사의 신념으로 반복되고 있는 말인지 헷갈려했다. 배려해서 한 말이라면 고마운 일인데 버스기사의 말투는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버스기사 개인이 가진 신념으로 전해진 말이라면 강한 의지가 느껴지기 마련인데 버스기사의 말투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의 말투는 느닷없이 사탕 한 봉지를 들고 나타나 계산원 앞에서 그것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졸라대는 어린아이 같았다. 사탕을 사주지 않으면 엄마의 기분을 나쁘게 하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그런 말투였다.


버스 하차벨이 새롭게 울린다. 버스기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승객 또는 중간에 타서 이 상황을 모르는 승객이 빠른 하차를 위해 운행 중 일어선다. 그럴 때마다 버스기사의 우려는 더 깊어지고야 만다. 몇 정거장을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그렇게 미리 하차 준비를 하는 사람 대부분이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여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하차문이 열리자마자 신속하게 내릴 수 없는 처지로 보였다. 그런 처지라면 여태껏 버스에서 지속적으로 눈치를 봐왔을 확률이 높다.

버스가 멈추면 일어날 것을 요구하는 버스기사도 있지만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하차하기 전에 내릴 준비를 할 것을 요구하는 버스기사도 많다.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걷다 보면 버스 안에 불편한 기운이 감돌고, 그 순간 버스기사가 짜증 섞인 말투로 '미리 준비 좀 하시지!'라는 말을 하기라도 하면 승객은 무방비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다. 짧은 순간 불쾌해지기 일쑤다. 버스기사가 아무리 일관적인 태도로 승객을 대해도, 승객이 매일 그 버스를 타지 않는 이상 승객은 자신이 탄 버스가 어떤 식으로 운행되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은 승객은, 성질이 급한 버스기사의 눈치를 보기 싫은 승객은, 신속한 하차를 위해 위해 뒷문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는다.


나는 버스 중간쯤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며 좀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젊은 승객이 미리 서있을 때 버스기사의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버스 기사의 애원이 또 시작되겠구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기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일까. 상대를 걱정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 부족한 그 말투는 내게 그런 것들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버스기사가 처음부터 그렇게 나이 든 승객에게 애원하며 우려를 표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시 버스 하차 전에 움직인 노인이 넘어져 다친 경험이 있다면, 그로 인해 버스기사가 난감한 상황에 처해진 적이 있다면, 버스기사는 그 일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하는 버스기사의 태도를 보며 그의 애원에 숨겨진 괄호를 채워보았다.


'제발 멈추면 일어나세요.(제가 난감한 상황을 만들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승객들은 대부분 가까운 빈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다 하차문이 열리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계단을 밟고 버스를 탈출했다. 한참을 지나 버스에 탄 젊은 남자는 버스기사의 그 애원을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버스기사의 그 선택적 우려가 어떤 마음일지 나는 혼자 상상했다.


버스기사의 우려는 선택적이었다. 버스가 흔들려도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그것은 상대를 위한 우려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난감해지는 상황을 미리 우려해 만들어진 말이었다. 난감한 상황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는 버스기사의 마음은 버스가 도로를 지날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고, 그 말들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신체적 약자들에게만 분명히 전달되었다.


"거 참 말 안 들으시네."


버스기사는 불특정 승객을 향해 그 말을 토해냈다. 참을 수 없어 튀어나온 말로 느껴졌다. 버스 안의 분위기는 경직되었고, 나는 그 순간 버스기사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버스 앞자리에 설치된 유리에 버스기사의 이마 부분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풍성한 버스기사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볕에 그을린 피부만이 언뜻 느껴졌다. 아이와 버스를 타고 있었던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 미리 일어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버스를 30분 이상 타면서 버스기사가 어떤 부분을 우려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이와 함께 내가 미리 뒷문에 서있다면 버스기사는 또다시 미간을 지푸릴 것이 뻔했다. 그러다 아이가 불안하게 휘청이기라도 하면 버스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버스를 탔다면 미리 내릴 준비를 하지 않은 나를 답답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잠깐 버스를 탔을 뿐인데 운행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승객이 은근히 그 비유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원칙적으로는 버스가 멈추고, 안전하게 하차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그 부분에는 일관성이 없다.

그날 버스기사가 승객을 우려하는 마음은 좀 이상했다. 그 우려는 버스 안을 애매한 방식으로 불편하게 만들었고, 버스기사는 그 잘못을 전부 승객의 탓으로 돌렸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 그의 말은 의도된 것처럼 불친절했고, 그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날카로웠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버스기사의 그 선택적 우려를 나는 받지 않았다. 나는 버스를 타는 내내 내리는 승객의 몫까지 눈치를 함께 봐야 했고, 무사히 그 버스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그 순간 느꼈던 이상한 마음에서도 하차했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따지려는 건 아니다. 버스기사의 우려와 미리 하차를 준비한 승객의 마음은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마음은 버스 안을 어색하게 떠돌았고, 그 안에 머문 사람들은 그것을 못 본체 하느라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타인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지켜보며, 나는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버스기사가 되어 보기도 했고, 나이가 든 노인이 되어 보기도 했다. 이해가 되기도 했고,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조금만 상냥했다면. 아마 내 마음은 이상하다기보다는 표면이 부드러운 따스한 호빵처럼 보기 좋게 부풀어 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버스 안에서 내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틈을 향해 살짝 기어 나오기를 반복했다. 운행 내내 앞문을 열어 새로운 사람을 태우고, 뒷문을 열어 태웠던 사람을 하차시키는 버스기사의 마음도 그랬을까. 나는 그 마음이 조금 알고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