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까지나 이대로일까.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까. 얼마큼 쓰면 잘 쓰게 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나아지면 저만큼 갈 수 있을까. 어째서 나는 ‘글쓰기’라는 행위에 집착하는 걸까. 집착하면서 왜 스스로를 인정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일까. 내 글이 솔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글이 부족한 건 아닐까.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이뤄내야만 할까? 글쓰기를 통해 뭔가 이뤄내야만 한다면 그건 나를 위해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쓰는 자체로 이미 충분함을 느낀다. 좀 이상한가. 내가 쓰는 글을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고 그것이 돈벌이 수단이 된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무엇을 이뤄내야 한다는 건 사회나 타인이 요구하는 것이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책을 내서 유명해지고 돈을 벌고 계속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내게도 꿈같은 일이다. 다만 그것이 나의 글쓰기의 원초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글쓰기를 대체 왜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어떤 이는 글쓰기로 인해 자신의 삶이 의미 있어졌다는 식의 답변을 한다. 나도 정말 뭔가 멋진 대답을 하고 싶은데 나는 글쓰기를 마음에 품기 전에도 그럭저럭 잘 살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삶이 더 풍부해지고 의미 있어지긴 했지만 이전의 삶이 특별히 나쁘지도 않았다. 지금의 대답을 위해서 과거를 시시하게 만들 필요성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쓰기를 원한다. 왜일까. 쓰지 않을 때도 쓰고 있을 때도 쓰고 싶다는 기분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어떤 것을 이뤄내기를 간절히 원하지는 않는 상태다. 간절하지 않은 것이 문제일까. 그냥저냥 먹고살 수 있는 처지가 나를 이렇게 느슨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일까.
그냥 글이 쓰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그런 감정을 나누고 싶다. 타고난 성격 탓일까. 되도록이면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내가 쓴 글이 얼마나 깊이 있고 의미 있는지 타인이 제대로 가려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쓴 어떤 글들과는 전혀 다르게 사람과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보기보다 불신부터 하는 나의 마음이 문제일까. 깊이 있는 작품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깊다’라는 것에 집착하고 ‘어떤 식의 의미가 있다’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긴다. 나는 내가 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설명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깊이와 의미에 집착할 때가 많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단어를 쓰고 문장을 만든다. 그 결과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가. 물론 격이 다르고 가치가 다를 수 있다. 다만 무슨 기준으로? 그런 의문이 생긴다. 그 기준에 대해 우리 모두가 동의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불분명한 것들을 정확하게 알고자 마음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은 곤란한 상황을 자꾸 맞닥뜨린다. 이렇다 할 변명도 포장도 잘 되지 않는 행위를 계속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이 짜놓은 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건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아서라든지, 그것 자체가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판에서 좌절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나마 하고 싶은 것이 글쓰기인데 그 판에 들어가 내 실력이 얼마나 변변찮은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그런 식으로 좌절하고 있는데 그 판에 들어가 또다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괴롭다. (이렇게 말하면서 브런치북 공모전에는 참여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돈벌이에 나서려고 안간힘을 써야 하는데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사회에 속하지 않기만을 원하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다. 내게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이 자꾸 여기서 저기까지, 저기서 여기까지 맴돌며 생각하기를 허락해 준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면, 무엇이라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경쟁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판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20대 어떤 시절에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으니 나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신 상태다.
내가 언제쯤 글을 흡족하게 잘 쓰게 될지 알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있긴 할까) 아마 알 수 없을 것이다. 알 수 없으니 알 수 없어도 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아님 알 수 없으니 그만하는 것이 나을까. 나는 그 사이에서 ‘망설인다’라는 단어를 넣고 무심한 표정으로 서있다. 언제까지 그것이 내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글을 쓰며 수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대답은 알 수 없음으로 귀결된다. 그 무책임한 대답에 기대어 나의 마음은 반복해서 휘청이고 있다. 그런 과정으로 깊어지기라도 했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지만 깊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 모든 대답은 알 수 없음으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단어를 바꿔 질문하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겹겹이 쌓여 내게 묻고 있다. 스스로 짜놓은 판에서 빠져나올 생각은 없느냐고. 언제까지 망설일 작정이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그게 언제까지인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