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소설 ‘인간실격’의 첫 문장이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타인과 나의 삶을 아무리 겹쳐 보아도 교집합이 보이지 않을 때면, 문득 이 문장이 떠오른다. 내 생애는 텅 빈 채로 있다가 텅 빈 채로 끝인가. 나는 최근 새로운 고민을 만들었는데 이 고민은 꽤 해결을 원하는 얼굴로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내 고민은 생겼다고 하기엔 그렇고 만들어진다. 아주 작았던 의문에 수많은 말들이 보태져 거대한 고민이 탄생된다. 그 고민은 아주 고약한 성미를 가지고 있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건 정해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하고 싶은 것을 (노력은 하지 않고) 특출 나게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즐기곤 하는데 그건 마치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척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근처에 어슬렁거리긴 하지만 결코 말은 걸지 않는 그런 모습인데 어릴 땐 그게 좀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서툴러 보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확실히 그게 좀 징그러워 보인다. 잘하지 못하는 걸 그냥 좋아하는 건 괜찮지만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잘하지 못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도 않으며 잘하리라 희망하지도 않는 건 문제가 있다. 문제가 있으니 고민이 만들어진 것이다. 갑자기 나에게 문제가 많은 것처럼 느껴져서 핑계를 대보려고 몇 줄 썼는데 신통치가 않아 지웠다. 역시 또 부끄러워진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들을 꽤 열심히 계획했다. 아르바이트 면접에 가서 ‘이래도 나를 뽑으실 건가요?’라는 스타일로 어수선한 말을 늘어놓았다. 면접에 가서 그런 태도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 항상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시키는 건 뭐라도 다 할 수 있다는 자세로 면접을 보았다. 그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일자리 알선 담당자에게도 불만만 쏟아냈다. 그 전화가 달갑지 않았다. 겨울에 괜찮은 일자리가 있어서 잠시 구직등록을 해놓은 것인데 적극적으로 내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게 묘하게 불편했다. 나의 불편함과는 상관없이 담당자는 친절하고 유쾌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며 다른 일거리를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하고 싶은 일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로도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내가 쓴 글을 유료로 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또 다른 고민이 탄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어떤 기로에 서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제와 다른 오늘이 오늘과 다를 내일이 내게 다른 답을 줄 수 있을까. 문장을 모두 붙여 쓰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문장들이 모두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쓰는 내 마음에 여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일은 또 내가 무슨 고민을 더 크게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미결의 고민들만 켜켜이 쌓이는 건 아닌지.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게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다.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그 말을 쓰는 다자이 오사무와 그 말을 하는 오바 요조의 얼굴이 겹친다. 거기에 얼굴이 있었을까. 어째서 얼굴이 없다고 느껴지는 걸까. 부끄러운 고민을 해왔습니다. 어쩐지 얼굴이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