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젼정 May 22. 2023

나는 그럴 때마다 불안을 만난다


불안이 온다, 주기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내 등뒤에 서 있는 불안이 느껴진다. 서서히 목을 조여 온다. 목을 조여 오면서도 목을 완전히 조르지는 않는다. 어떤 불안은 당당하고 태연하다. 이 감정을 어쩔까 싶어 또다시 흔들리는 나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불안은 안정적이다. 불안이 안정적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말이 안 된다고 해도 그리 말할 수밖에 없다. 내게 온 어떤 불안은 정말이지 그렇다. 무척이나 안정적이다. 그 불안은 잠시 비워둔 자리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듯 군다. 수건 돌리기에서 잠시 술래가 되었을 뿐, 자신의 자리는 꼭 거기 있는 것처럼 자리를 잡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불안은 내게 묻는다. 이번에는 얼마나 불안해질 것인지. 얼마 동안이나 괴로워할 것인지. 나는 대답을 회피한다. 제자리에서 눈을 감고 빙빙 돈다. 불안을 마주 하지 않음으로써 거기 불안이 없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쉽게 느껴진다. 나는 당혹스러워한다.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불안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불안은 잠시 분리되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주로 집밖으로 나갈 때 그렇다. 불안도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불안이 쉬는 동안 나는 불안이 사라졌다고 착각하며 안도한다. 그렇지만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집에 도착한 순간 알게 된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충실히 집안일을 해낸 다음 오늘 하루에 대해, 내일 하루에 대해 고민할 때쯤이면 불안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불안은 내게 묻는다. 이번에도 속은 것이냐고. 바깥에서 자신이 본 세상을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나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을 뿐이다. 불안이 느껴지면 마음은 늘 그랬듯이 요동친다. 그러다가도 이내 잔잔해지는데 불안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불안을 극복해서도 아니다. 그저 불안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불안에 적응했을 때 느끼는 불안의 안정감은 끝없이 펼쳐진 밤바다와 닮았다. 고요해 보이는 표면 아래 무슨 일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어난 어느 날 아침 나는 그런 불안을 느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불안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불안을 맞이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기묘하게 가라앉았다. 정말이지 안정적인 불안이었다. 나는 그 일상적인 불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정에 대할 때 나는 그저 받아들이려 한다. 이겨내는 방식보다 그 방식이 더 내게는 편하게 느껴진다. 이겨내려고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말에는 악이 담긴 단어가 들어간다. 이기기 위해 평소에는 잘 쓰지 않았던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끄집어내고 내뱉는다. 그런 힘을 쓰고 힘이 든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힘을 써버린 기분이 든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더럽혀진다. 때로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 어렵고 힘든 방법을 택하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나는 받아들이는 쪽에 서 있고 싶다. (현실적으로 늘 그럴 수는 없겠지만.) 불안을 반갑게 맞아할 수는 없겠지만, 불안에서 오는 초조함과 무질서를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불안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때때로 불안이 찾아온다. 주기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나는 그럴 때마다 불안을 만난다. 그 불안을 막아서지 않음으로써 나는 기록한다. 불안이 가진 다양한 얼굴에 대해, 불안이 가진 기묘한 안정감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