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젼정 Oct 21. 2021

달동네 불청객과 이천 원

깊고, 먼 꿈나라로 떠나는 초능력을 지닌 사람

평일 대낮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쏟아진 이쑤시개 통, 아무렇게나 열린 서랍, 보란 듯이 펼쳐진 가계부는 마실을 다녀온 엄마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기까지였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까. 그런 상황과 전혀 관계없다는 얼굴로 동생은 꿈나라로 가 있었다. 

가볍고 부담 없는 마실을 다녀온 사이에 생겼다고 하기엔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엄마는 동네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도 친구랑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단칸방이 우리에게 현실을 보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동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고단한 얼굴로 들숨에 잠을 삼키고, 날숨에 피로를 뱉어내고 있었다. 


"이천 원을 가져갔네."


엄마는 가계부를 뒤적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도둑도 참 너무하다. 못 사는 동네에 와서 꼭 이래야만 하나. 도둑이 뭐 개인 사정을 봐줄 정도라면 도둑이겠냐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벼룩의 간을 내먹지! 

수봉공원 언덕 아래, 골목 사이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 나오고, 주방을 통해야만 단칸방에 진입할 수 있는 그런 비슷한 구조의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동네를 우리는 달동네라고 불렀다. 우리가 사는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비슷비슷하게 생긴 집들 중, 아니 문들 중 하나였다. 그 문은 그냥 화장실 문 정도로 생겼다. 한 가정을 보호하고, 보살피기에는 얼핏 봐도 허술해 보이는 문이었다. 문을 잠가도 힘을 세게 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열릴 것만 같은, 그런 문이었다. 철커덩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살림살이는 뭐 하나 내놓을 것이 없을 정도였다. 내놓을 것이 없을 정도가 아니라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동생은 엄마와 나의 당혹스러움이 황당함으로 변환되는 순간쯤 잠에서 빠져나왔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동생은 나보다 작은 몸으로 잠에서 덜 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이 괜찮은지 다시 확인하고, 엉망이 된 방을 정리했다. 


"너 계속 자고 있었어?"


엄마가 동생에게 물었다. 얼굴이 동그란 동생은 큰 동그라미를 앞뒤로 끄덕였다. 이쑤시개 통이 쏟아질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계속 잠을 잤다니, 그 잠은 대체 얼마나 깊이, 멀리 간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 좀도둑이 다시 우리 집에 오면 어쩌나 걱정을 하다가 이내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안심했다. 서랍을 뒤지고, 가계부를 뒤져도, 나오는 건 이천 원뿐인 집에 다시 올 리는 없었다. 게다가 아이가 자고 있는 상황에 재빠르게 도둑질을 하려다가 급해진 마음에 미숙한 실수를 저지른 걸 보면 더더욱 그랬다.


"자고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지. 그 도둑도 참 불쌍하다. 열심히 뒤졌는데 이천 원이라니."


어질러진 방이 다 정리되었을 때쯤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엄마는 도둑을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수많은 것들을 엄마는 불쌍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동생이 그때 자고 있었던 것만큼은 나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한 도둑과 눈이라도 마주쳤다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동생은 자신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잘 모른다. 그 상황의 목격자는 엄마와 나, 두 사람이었다. 

달동네의 불청객은 이 천 원을 가지고 무엇을 했을까? 계속 도둑질을 했을지, 그날 쏟아진 삐죽한 이쑤시개에 놀라 도둑질을 그만두었을지 영영 알 수 없을 일이다. 도둑인 그를 불쌍히 여긴 엄마의 마음을 봐서라도 이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 이 천원은 사라지고도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동네는 밤이 일찍 찾아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고단한 삶을 재웠다. 잠을 자고, 일어나 살기를 반복하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이 지난하게 반복되었다. 반복된 삶은 티끌만큼 나은 삶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달동네에서 미애라는 친구와 조금 친해질 무렵, 언덕보다 더 낮은 곳으로 우리는 이사를 갔다. 달이 잘 보이지 않는 동네로 착륙한 우리는 또 작고 가벼운 티끌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생은 지금도 아무 때나 잠에 빠져든다. 그것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초능력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자신이 자려고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깊고, 먼 꿈나라로 떠나는 능력을 지닌 사람, 나는 어른이 돼서도 동생 외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부러운 능력을 가진 동생은 들숨에 삼킨 잠을 빠르게 에너지로 바꿔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다행이지. 언제든 잘 자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어서. 


좀도둑은 동생의 초능력을 보았고, 나는 그가 남긴 놀람의 흔적을 보았다. 이천 원은 도둑맞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이천 원어치의 글을 남긴다. 이제 좀도둑을 그만 놓아주어야겠다. 



이전 06화 언제 잃어버린지도 모르게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우리에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