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가 있다는 건 너무 좋지 않아?

by 젼정


읽을거리가 있다는 건 너무 좋지 않아?


그건 좋아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거든.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다고 느끼는 건 꽤 어려운 일이라, 그 순간은 특별해질 수밖에 없어. 커피를 마시면서 짧은 글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떠올렸어. 그렇게 아무 페이지나 읽으며 또다시 이 책이 ‘마치 라디오 사연같네’라고 느꼈어. (이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사실에 그저 즐거워졌고.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티셔츠에 대해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쓰지는 않고 간직하고만 있는 모자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졌어. 모자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남편에게 모자 보관 위치를 물었고 나는 그것이 여전히 잘 있다는 사실에 살짝 마음을 놓았어. 여전히 예쁜 색이네. 촌스러우면서도 예쁘네,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그 모자를 써보라고 권했는데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셀카를 찍더라고. 사진을 찍자고 하면 순순하고 귀엽게 브이를 그리던, 그 모습을 같은 사람에게서 전혀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또 다시 확인하고야 말았어. 그건 슬픈 일이라고 할 수는 없고, 대체 그걸 뭐하고 해야 할까. 자신의 세계로 접속해버린 인간이 상대와의 사이에 그려놓은 동공(洞空)이라고 하면 적합할까.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버린 틈을 확인하게 될 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묘하게 기쁘거나 화낼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는, 아 그 기분은 정말 별로지 않아? 그래도 읽을거리가 있다는 게 역시나 다행이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무책임하게 떠난다는 게 마음에 들어. 그 덕분에 일요일이 특별해지는 거니까. 역시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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