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도록 내버려 두는 마음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남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만남도 나의 글쓰기를 핑계로 시작되었다. 남편은 그 당시 영화 미술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남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방구석에서 시나리오 필사나 하고 있던 내게 남편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좀 있어 보였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언젠가 작가 되리라는 사실을.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야망과 현실의 괴리감은 컸다. 나는 당장 어디라도 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노사연의 '만남' 노래 가사처럼 나는 또 글쓰기를 만났다.
"우리 헤어진 거 아니었어?"
글쓰기가 묻는다.
"아니었어!'
그래, 아니었다.
애써 잊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네.
나는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함께 시작한 사랑을 혼자 끝내지 못한 사람처럼 질척거리며 또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이번에는 결코 헤어지지 않겠다는 강렬한 마음으로. 공백이 좀 길어서 그냥 만나기가 그랬던 나는 '브런치'를 이용하기로 했고, 그 전략은 아직까지는 꽤 나쁘지 않은 편이다. 많지는 않더라도 읽어주는 이가 있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남편과 나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어준 '글쓰기'는 내가 아무리 질척거려도 날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나를 찾아온다. 가끔은 차라리 내가 무엇이 되고 싶지 않았으면 싶을 때도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일을 하면 작게나마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남편에게 무거운 짐을 혼자 들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많다.
남편은 그런 나를 모른 척한다.
남편은 나를 응원하지 않는다.
남편은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
나는 안도한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이 지난한 시간을 다그치면 어쩌나, 잘하고 있는지 검사라도 하면 어쩌나,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나의 지난날들을 하나씩 캐물으면 어쩌나, 남편이 내게 '어쩌나'를 주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저 내버려 두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때로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전업주부로서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든 '나의 글쓰기'가 남편에게는 '불확실한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그 시간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길 바란다 해도 나는 그를 비난할 수 없을 것 같다. 남편이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얼마나 희생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의 글을 읽지 않고도 내가 계속 쓰도록 내버려 두는 마음이 늘 나를 지킨다. 별 거 아닌 일로 자주 흔들리는 내가 시시해졌다가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남편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내가 때로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고 싶다. 나의 글을 읽지 않는 당신이 존재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