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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11. 2021

제가 덜 힘든 것 같아서, 혹시 그게 싫으신 건가요?

나의 직업은 전업주부다.

가끔 직업란을 마주할 때마다 난감한 기분이 든다. 직업이라는 단어에 속할 수 없을 것 같은 ‘주부’를 선택하며, 정말 주부는 직업이 맞는 걸까 생각한다. 하루 종일 집안일이 반복된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는데 뭐가 힘드냐고 대놓고 묻는 무례한 사람도,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세탁의 과정은 옷의 분류, 세탁기 투입, 널기, 개기의 과정으로 요약된다. 청소의 과정은 환기와 방바닥 탐색으로 이뤄진다. 그 외에 음식 만들기와 설거지는 세트로 진행되며, 설거지를 끝내고 산뜻한 기분으로 물을 한 잔 마시면 또 설거지가 발생된다. 화장실 청소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틈틈이 해줘야 한다. 변기에 잠긴 물 테두리의 노란 선을 보지 않으려면, 세면대에서 세수하면서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려면, 화장실 바닥을 발로 밟게 된다 하여도 발가락을 움찔하지 않으려면, 화장실 청소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런 기본 업무들 외에 침구 교환, 화분 가꾸기 등도 수시로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전업 주부에게는 육아 업무가 추가로 발생된다. 추가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거의 주 업무가 된다. 아이가 어릴수록 그 업무는 강도가 세고, 야근이 잦다. 아이는 집안 곳곳에 꽃이 아닌 장난감과 종이를 뿌려 놓는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자신도 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치울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 그 뒤치다꺼리는 전업주부인 나의 몫이다. 아이의 연령에 맞는 교육과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물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관련 서적을 읽거나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한다.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서 나의 하루가 돌아간다. 이렇게 쓰다 보면 남편은 뭐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남편도 이 모든 것의 일부를 돕는다. 남편의 주된 일을 회사 일이고, 나의 주된 일은 집안일이다. 나는 그것을 적절하게 분류하려고 애쓴다. 내 일을 남편에게 은근히 미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다.







이런 일상은 계속 반복된다. 집에서 주부는 꼭 필요한 사람이면서도 사회에서는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여러 논란을 불러온 '82년생 김지영'의 책과 영화를 보면 더 정확히 그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는 부모가 되면서 '나'로 살아왔던 시간의 전부를 그대로 쓸 수 없게 된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시간에 뛰어 들어가 열심히 살아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찾기는 힘들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편하게 논다고 표현하고, 나가서 일을 하면 엄마 없이 지내는 아이가 불쌍하지 않냐고 지적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지인과  커피를 마시거나 문화센터에 가서 뭘 배우기라도 하면 그 비난은 더 거세진다.


직장인이여, 당신들은 근무 시간 내내 일만 하는가. 일 끝나면 회식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쓰지 않는가. 전업주부로 사는 내 삶에 당신이 무엇을 보태주기라도 하였는가. 자신보다 조금 편하게 사는 것 같아 보여서 배가 아프기라도 한 건지,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깔고 뭉개야 자신이 더 나은 사람 같아지는 건지, 나는 가끔 전업주부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제가 덜 힘든 것 같아서,
혹시 그게 싫으신 건가요?



분명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음에도, 존중받지 못하는 전업주부로 사는 일은 그리 신나지 못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를 키우면서 흔들린 멘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아졌지만 내 경력은 후퇴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놓아야 했다. 친정 엄마가 아이를 잘 봐주셨지만 그 사이 혼자 있는 아빠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일을 그만두면서 다시 일하기 힘들겠지 생각했다. 그걸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둘째에 대한 질문 아니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일하는 게 당연히 더 힘들다면서 전업주부인 나를 은근히 깎아내려도, 넌 아무것도 안 하잖아, 라면서 나를 조리 있게 비난해도,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실제로 그런 시선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직장인 vs 전업주부, 남성 vs 전업주부, 워킹맘 vs 전업주부, 돈 버는 가장 vs 전업주부, 노인 vs 전업주부 등등, 여러 대결 구도를 이용해서 전업주부를 돌려 깐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옆에 있어 줘야 된다더니, 아이가 크면 '나는 일하는 엄마가 좋아'라고 한단다. 이건 아니지 싶다. 아이는 그냥 엄마를 좋아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를 좋아할 뿐이다.


문득 쓰다 보니 더 억울하다.

남편이 회사로 출근해서 일을 할 때, 나도 일했다. 왜 이런 말들을 계속 들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식사 한 끼도 정성을 다해 준비했고, 집안은 항상 기본적인 청결을 유지했다. 소름 끼치게 깨끗하진 않아도 나름대로의 정리정돈이 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최선을 다 해도 승진이나 연봉 인상은 없는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괴로움을 오늘만큼은 실컷 토로하고 싶다. 나는 집안일을 하면서 글까지 쓰느라 실제로는 더 바쁘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일들을 서로 공유한다. 엄마는 나 학교 간 동안 뭐 했냐고 아이가 물어오면, 나는 집안일과 글쓰기를 했다고 말해준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만큼 집안일이 힘들지 않다 해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일이라 해도, 나는 내 직업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열심히 해봤자 당연한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은, 온전히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그러니 누가 더 힘든지, 가치 있는 일을 하는지, 계산기 두드리지 말고 서로를 존중해주었으면 싶다.


나의 직업은 전업주부다. 내가 덜 힘들어 보여서 당신이 불행해지는, 그런 어리석은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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