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고 있어서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을 들으면 당장 누군가에게 달려가 '사실 너를 좋아해!'라고 외쳐야 할 것 같다. 얼굴을 마주하고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문자나 편지로는 몰라도 만나서 정식으로 고백을 해본 적은 없다. 그만큼 고백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문자나 편지로 넌지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망설여지는 마당에 만나서 그런 말을 했다가 거절이라도 당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한때 술주정을 자주 한 적은 있다. 맨 정신에 해야 고백이지 술 마시고 한 말은 취중진담 아니다. 술주정일 뿐이다. 대부분의 술주정은 있었던 정마저 떨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내 술주정을 듣느라 고통스러웠던 이들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겠다.
사전적 의미로 고백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함'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고백을 자주 하는 편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고백과 흡사하다. 작가는 마음에 담아둔 생각들을 글로 옮긴다. 때로는 너무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고 있어서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밖으로 흘러넘치는 마음을 글로 주워 담을 때도 있고, 미련 없이 놓아주어야 할 것들을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고백은 설렘과 환희의 순간을 지나 상대의 대답을 기다린다.
상대가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마음을 숨김없이 말하고 쓴다. 내 고백을 받은 이들은 내게 '좋아요'의 대답을 보내기도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쓰윽 내 글을 지나치기도 한다. 나는 상대의 반응에 따라 기분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는데 이제는 바닥에서 그걸 올려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울렁거린다.
고백이라고 하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대학생 시절, 아주 자그마한 문구점에서 알바를 했었다. 5평 정도 되는 문구점에는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찾았다. 그 물건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구점 사장님은 꽃꽂이 수업이 있을 때 주로 나를 불렀다. 작은 문구점에 방문하는 손님은 뻔했다. 동네 꼬마 아이들과 아파트와 상가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문구점을 드나들었고, 나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든 신속하게 그 물건을 찾아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애가 떨리는 손으로 내게 편지를 건넸다.
오 마이 갓!
고백 편지였다. 그 남자 애는 어설프게 옷을 차려 입고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별 다른 말 없이 그 편지를 내게 주었고, 나는 별 수 없이 일단 받았다. 그 안에 든 내용이 심상치 않으리라 예감했다. 그 남자 애가 문구점에 몇 번 온 기억은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는데 그 애는 내게 좀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성 친구에게 인기가 있었냐고 물으면 '그다지'이라고 대답해야 되는 내 입장에서 그 편지는 반가운 동시에 부담스러웠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내게 고백 편지는 어쩐지 좀 느끼했다. 그 남자애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아 그 편지에 대체 무슨 대답을 해줘야 될지도 막막했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편지 내용이 꽤나 진지했다.
첫눈에 반했다,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살면서 그런 편지를 언제 한번 받아보겠나. 지금에 와서는 참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늦었지만 내게 그런 편지를 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나는 작은 쪽지에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적었다. 그가 낸 용기를 내가 그렇게 쉽게 쪽지에 접어 날려도 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알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의 마음은 받지 않았지만 편지는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에 그가 고백 편지를 주기 전에 나와 친분을 먼저 쌓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내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글을 더 많이 읽고 소통한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솔직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용기가 없어 대체로 상대에게 빙빙 돌려 말했다.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상대가 내게 그 말을 해주길 원했고, 기다렸다. 글을 꾸준히 쓰지 않고, 그냥 잘 써지기를 원했다. 저절로 되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모르니까 하면서 기대했다. 이제는 고백하지 않으면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사실 너를 좋아해!
내 글을 읽어주는 이들에게, 곁을 지켜주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들의 이름을 떠올려 본다. 정말로 고맙다. (취중진담 아니다.) 그 이름들이 나를 다시 쓰게 한다. 고백은 이 정도로 해두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에게 다음 글을 부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