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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요리사

나를 챙겨주는 야채 쉐프

by 찬달

집 주변에 편의점이 많다. 몇 걸음만 가면 브랜드별로 있어서 골라 가기가 좋다. 편의점 생활을 드나들다 보니 부엌에 갈 일이 많이 줄었다. 처음에는 조리가 단순해서 좋았지만 어느샌가 따뜻한 밥이 그리워졌다. 고슬고슬한 밥과 반찬들. 본가에서도 밥을 맛있게 먹었어서 더 고팠다. 간편식을 먹으면서 줄어든 나의 영양소는 바로 야채였다. 고기나 과자는 금방 구워서 먹고 남으면 냉동하면 된다. 야채는 깨끗하게 씻어서 일주일 마다 장을 봐서 먹어야 한다. 나이만 믿고 건강을 외치기에는 조금 늦은 거 같다. 부랴부랴 주변에 있는 마트로 걸어간다. 오늘은 어떤 야채를 살까.

야채도 식감이나 색깔이 참 다양하다. 초록색, 노랑색, 빨간색 등등. 이전에 엄마가 해줬던 해독주스의 스프 버전을 해볼까 생각이 들어 색상별로 야채를 샀다. 당근과 버섯, 양파, 토마토, 양배추 등을 골랐는데 이정도면 파워레인저 완전체가 다 모인거다. 스프는 간단하게 야채로만 간을 하면 된다. 핵심은 토마토다. 토마토 향이 은은하게 풍겨오면서 다른 야채의 부드러운 식감이 마음에 드는 요리이다. 밥 없이 스프만 먹어도 영양소를 다 챙겨 먹을 수 있다. 한참 야채 스프를 자주 먹을 때,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는 이야기도 살짝 들었다. 야채의 힘인 걸까.

야채 요리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은 야채를 썰 때이다. 너무 딱딱하면 손목이 아프지만 부추와 같이 얇은 식재료들은 썰기가 쉽다. 깨끗하게 씻어서 도마에 정갈하게 올려 놓는다. 대충 눈으로 길이를 보고 고양이 손 자세 준비. 탁탁탁. 내가 상상했던 대로 썰려서 내심 뿌듯하다. 요리멍이라는 말도 있다는데. 무언가에 집중을 하는 과정이 생각을 비우기에 좋은 거 같다. 야채를 챙겨 먹으면서 요리를 하게 된다. 요리는 나에게 고요한 집중을 할 수 있게 한다. 하나씩 채워가는 나만의 야채 요리 시간. 다음 주도 야채를 사러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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