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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그리다

by 찬달

초등학생 때 방과 후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큰 스케치북을 채우려고 이리저리 크게 그리던 기억이 있다. 학창시절에는 예체능 다니는 것이 유행으로 번져 있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미술도 시작했다. 피아노는 매번 동그라미를 그리고 지우는 것에 머리가 아팠다. 내 손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달에 1번씩 엄마에게 이제는 그만 다니고 싶다고 말을 했다. 결국에는 피아노는 그만 두게 되었다. 그래도 꾸준히 했던 건 방과후 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술반 수업이었다. 선생님도 좋으신 분이었고 여러가지 활동을 했다. 종종 쿠키도 굽기도 하고 나만의 파우치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가장 오래 연습했던 스케치는 소묘였다. 물건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려야 했다. 물건에 눈이 있었다면 내가 부담스러웠겠지. 쓱쓱 그리고 나면 선생님이 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물건의 입체감은 그림자에서 나온단다. 저기 빛 오른 쪽에서 오잖아. 그림 그림자는 왼쪽에 생길거야.

지금도 단순한 그림을 그릴 때도 그림자를 넣으려고 한다. 길을 걷다가도 그림자가 없는 경우는 잘 없다. 빛을 받기에 곁에 어두운 그림자는 내 곁에 있다. 어쩌면 나의 슬픈 역사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이렇게 깊은 사람이 있다니 하며 놀랄 때가 있다. 더 대화가 이어지다보면 살아오면서 많은 풍파를 겪어서 쌓인 내공이 생각의 뿌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위로의 말을 많이 해주는 친구는 자신의 그림자라는 그늘에서 쉬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서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적이 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최선을 다했는데 하며 두통이 왔던 날이었다. 캄캄한 어둠에서 나를 꺼내줬던 건 그림자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겪었던 일을 먼저 겪어서 토닥이는 방법을 아는 이였다.

하루를 보내면서 매순간 날씨가 다르고 기분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종이 위에 그려진 선이 아니라 냄새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이다. 살아 있으면 비도 보고 물웅덩이도 밟게 되는 날이 온다. 어쩌면 집에서 나오기 버거울 만큼의 슬픔이 곁에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서서히 괜찮아 진다. 눈물 몇 방울 흘려서 일어나기도 하고 수다를 떨며 우울함을 접어 버리기도 한다. 그 사이 내 발 밑에 있는 그림자는 더욱 진해지고 길어지겠지. 마음이 단단해 질수록 검은 그림자는 나의 갑옷과 같아 진다. 백신이 항체를 만드는 방법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소량의 바이러스를 넣는 것이다. 기침을 하고 열이 나는 내 몸은 맞서 싸우면서 몸은 강해진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림자가 있다. 많은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서 생긴 그 그림자를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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