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가르치는 것만이 남는다!
출근하면서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앞으로 다시 태어나면 교사를 하겠다는 현직 교사들이 5명 중 1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 교권 침해라고 한다. 학부모에 의한 악성 민원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교사들에게 생활지도권과 생활지도에 따른 면책권까지 부여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수면 위에 부상하고 있다.
학교가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생활지도면이다.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생활교육은 학부모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교권을 존중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큰 탈이 없었지만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사안에 따라 각각의 의견이 충돌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갈등을 중재하는 학교 내 기구는 법적 권한이 없는지라 학교 밖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교육적 접근면이다. 학생 중심, 학부모 의견 중심이 자칫 교육 수요자의 의견이 우선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현재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교권 추락의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교사의 교육관, 학교의 교육적 입장보다 수요자의 주장이 세다 보니 학교에서 스스로 판단해서 추진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학부모의 의견 창구를 열어 두되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전달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싶다.
셋째, 학교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다양한 법들이 오히려 악성 민원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교폭력예방법만 해도 그렇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법적 조항이 신설되면서 학교에게는 이런 조항들이 악성 민원의 빌미가 되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왜 우리 아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설정하느냐에 대한 민원이 잦은 편이다. 아동학대법도 그렇다. 신고만으로도 교사들은 교육적 행위에 대해 제한을 받고 더구나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교사로 임용되는 것도 어렵지만 교사 노릇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학교 현장에서 민원을 일차적으로 받아내는 교감의 입장에서 선생님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교사 노릇하기 정말 어려운 시기다.
선생님들이 소신 있게 교육적 활동을 펼쳐 낼 수 있도록 교감으로써 해야 할 역할을 충분히 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늘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그렇다고 교감이 소위 말해서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쪽 치이고 저쪽 치이고 눈치만 바라야 할 때도 많다. 동네북 신세로 전락당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럼에도 학교 안 울타리 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사람은 교감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최대한 선생님들에게 일거리(행정업무)를 주지 않고 교감 선에서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꾀가 나고 체력적 한계 때문에 이일 저일 조금씩 선생님들에게 떠 넘긴 적이 없지 않다.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한 마음을 갖는다.
선생님들이 편안하게 교실 속에서 학생들과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자리가 교감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교감 또한 쏟아지는 공문과 민원, 지역사회 협력으로 허덕거릴 때가 많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노력하면 조금이나마 얼굴에 미소를 띠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첫째도 둘째도 선생님들의 건강이 먼저고 선생님들의 가정과 주변의 일들이 평안해지는 것이 제일이다. 선생님이 건강해야 교실 속 아이들도 양질의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선생님이 평안해야 학생들도 정서적 안정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한다. 힘내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힘껏 돕고 기도해 드려야겠다.
오늘 하루만큼은 선생님들이 주인공이 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같은 마음으로 나 또한 선생님들을 대해야겠다.
듣고
낮아지고
섬기고
좁은 길을 찾아가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 놓고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문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