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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y 15. 2023

교감의 책상

책상이 커서 좋은 이유

책상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사전적 뜻으로는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을 말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책상과 연관된 말들은 다양하게 쓰인다. 예를 들면 이렇다.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다는 표현은 현실과 부딪치며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지 아니하고 사무실에서만 맴돌거나 문서만 보고 세월을 보낸다는 소극적인 직장인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표현이다. 공무원들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욕먹는 것 중에 하나가 '탁상행정'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행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탁상행정을 예로 들기도 한다.  




"후기 로마 제국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 해법으로 더 많은 절차를 만들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관료들은 책상에 쌓인 서류더미에 충실히 서명을 했고, 이것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불렀다. 황제와 관리는 문서에 압도당해서 읽지도 않고 서명을 했고"(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120쪽)




반면 책상과 씨름하다는 표현은 적극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에서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대군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태종이 충녕을 선택한 이유는 독서가였기 때문입니다. 태종은 개국은 말 위에서 하지만 수성은 도서관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군주입니다. 양녕이 말 위의 사람이라면 충녕은 책상 위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태종은 독서인이라는 이유로 충녕을 선택한 것입니다"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243쪽)




3년 전에 책상과 관련지어 의미 있는 분석을 해 놓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요약한 부분을 옮겨 본다.




"남성은 서열을 무척 중요시한다. 사무실 책상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자신의 서열을 가름 짓는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생각하기에는 아주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책상 위치가 뭐가 중요하냐고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그렇게 가볍게 넘기다 보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다" (오만하게 제압하라를 읽고)





그렇다면 내 책상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내 책상은 넓고 크다. 누가 봐도 위압감이 들 정도로. 전 교장님의 배려(?)로 큰 책상으로 교체되었다. 책상이 크다 보니 많은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다. 일단 내 시야에 보여야지만 일을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다. 서랍장 속에 넣어둔 물건은 일부러 열어보지 않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교육공무원 인사실무편람, 교육공무원 인사 관련 규정, 00 지역교육지원청 인사관리지침, 초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초등학교 교육과정 등등




책상이 넓고 크니 이 많은 책들을 항상 눈에 보이는 장소에 올려놓을 수 있어 좋다. 책자들 말고도 다양한 물건들이 올려져 있다. 각 교실과 사무실로 연결할 수 있는 검은색 전화기, 커다란 모니터 2개, 일정을 빼곡하게 적어 놓은 탁상달력, 볼펜들을 꽂아 놓은 볼펜통(급할 때에는 누구나 꺼내 쓸 수 있는 구조라서 시간이 지나면 좋은 볼펜들은 깜쪽같이 사라진다^^) , 도서관에서 얻어 온 국어사전, 메모할 때 사용할 포스트잇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교감 명패가 올려져 있다. (특정 교육단체에서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명패를 치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교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서 작업하고 시간을 보낸다. 교감과 책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마 퇴직하기 전까지는 책상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 살아야 할 것이다.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다. 책상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컴퓨터를 절제하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인터넷 검색하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컴퓨터(인터넷)라는 것이 요물이다. 잠깐 검색한다고 하지만 30분, 1시간은 금방이다. 어깨도, 눈도 뻑뻑해진다. 건강에 하등 좋을 것이 없다.




투리 시간을 아껴 책상에 펴 놓은 각종 책을 슬금슬금 읽어내며 최대한 컴퓨터에게 불필요한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감 책상이 커서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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