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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y 12. 2023

주인과 손님의 차이

학교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있었던 일

어제 일이다. 신입생 입학식 준비로 교무실 직원들이 대부분 식장을 준비하느라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모른 체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시 뒤 또 걸려 왔다.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00초 교감입니다"

"000입니다"

"네?"

"00 00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교감 선생님, 우리 아이들 반 배정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00 위원이라는 분이 사적 직위를 이용해 보안 사항으로 지키고 있는 반 배정 정보를 학교로 전화를 걸어 알려고 하다니. 순간 불쾌하고 놀라웠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다니.


"네. 000님. 반 배정 정보는 보안 사항이라 교장도, 교감도 모르는 사항입니다"


라고 둘러대며 전화를 끊었다. 추측컨대 자녀가 몇 반으로 배정되었는지 궁금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미리 정보를 알아내서 친한 친구가 있는 반으로 옮겨 달라는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된 전화 내용이었다.


학교란 무엇일까?

학교에는 왜 학부모를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원으로 구성할까?

학부모를 위원으로 위촉했을 때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일까?


일본 고지마치중학교의 사례를 보면 학교를 지역이 운영하는 사례가 나온다.

학교, 학부모. 지역 주민이 책임과 리스크를 동시에 짊어지는 학교로 소개되어 있다.


3년 전에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렇게 느낌을 남긴 적이 있다.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는 청문회가 아니다. 간혹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시는 학부모 위원들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따지고 들거나 학교에 이런저런 주문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학교와 학부모 간 관계를 보면 학부모가 '소비자', 학교가 '서비스 사업자'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학부모의 불만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대응하다 보면 학생의 자율, 학교의 자율을 뺏기는 결과가 나타난다. 학부모가 '손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주체가 되지 못한 결과다. 학부모들에게도 오너십을 부여하고,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합의를 이뤄내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말보다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지 마치 중학교는 불가능한 현실을 변화시켰다. 학교, 학부모, 지역 주민이 오너십을 가지고 책임과 리스크를 동시에 짊어지고 학교를 변화시키고 있다. "


학부모가 민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운영의 동반자요 책임 있는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자녀만을 위한 학부모가 아니라 모두의 학생을 위한 학부모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학부모들이 학교의 주체가 되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위원들이 되고 협력하는 학교의 조력자가 되는 학교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녀를 키워 본 부모의 입장에서 오늘 걸려 온 전화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신 분이라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신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위와 같은 내용으로 문의를 했더라도 나는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교감으로서 지난 1월과 2월, 학생이 방학 중인 학교 분위기가 참 좋았다. 학교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딱 한 가지다. 학생이 방학 중이라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학부모 민원 전화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된다. 어느 학교에서는 학생 맞이용으로 다양한 문구로 교문 앞에 현수막을 내건다.


 " 3월이라서 봄이 아니라 너희가 와서 봄이다"라는 식으로.


기쁜 마음으로 학생들을 맞이해야겠다는 마음 한 구석에는 학부모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을 살짝 내려놓는다.


개학을 앞둔 삼일절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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