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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y 12. 2023

간격의 미학

교감과 교사 사이

사람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이맘때면 신학기 준비로 교실마다 선생님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교실을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 이전 교실에 있던 물건들을 옮긴다. 박스 단위로 포장해서 옮기기도 한다. 어떤 선생님들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도구를 활용하기도 한다. 짐 옮기는 소리가 나서 가끔 교실로 올라가 선생님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방학 동안 잘 지냈냐고, 신학기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냐고 물어본다. 모두들 잘 지냈다고 한다.  혼자 있는 교실에 불쑥 들어가 이야기를 건네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불편해 할 수 있기에. 특히 교감이라는 사람이 자꾸 교실로 찾아오거나 복도를 기웃기웃거리면 불편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조심하게 된다.


오늘은 교무실 가족들 몽땅 데리고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왔다. 지난 한 해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올 한 해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식사를 마치고 교무실에 오니 선생님들로 북적거린다. 선생님들도 모두 나가서 식사를 하고 오셨다고 한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신 한 선생님께서 섬겼다고 한다. 참 대단하시다. 요즘 세상에 그러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얻어먹기는 쉬워도 남을 접대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교감과 교사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교감이 교무실로 들어오니 잠시 있다 모두 교실로 올라간다.  아무래도 교감이라는 존재가 편치 않은 게 사실인가 보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편하게 이야기 나누다가도 교감이 끼면 금세 대화가 중단된다.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었으니 시간 가는 게 야속하다. 편한 교감, 격식을 차리지 않는 교감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선생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다.  교감과 교사와의 간격은 좁히려야 좁힐 수 없을 것 같다.


소화 좀 시킬 겸 학교 근처 뒷산에 오른다. 학교 안에서도 교감이 갈 곳이 많지 않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산책. 산책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같이 가자고 하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선뜩 같이 가자고 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학교에 내 또래의 분들이 없다. 혼자서 산책을 간다. 산속 길을 걸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잡다한 생각도 잘 정리되어진다. 혼자서라도 기분을 전환시키며 산책 다녀오길 참 잘했다.


교무실은 조용할 때가 거의 없다. 늘 상주하는 직원들도 있고 선생님들도 가끔가끔 들어온다. 좁은 공간의 교무실에서 뭔가 개인적인 일에 집중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다. 오늘은 잠시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가서 잠깐이나마 책 한 권을 들고 읽어본다. 컴퓨터 앞을 잠시 벗어나 쉼을 갖는 방법 중 하나다.


『안녕, 소중한 사람』의 저자 정한경 님은 인간관계를 숲 속 생태계에 비유하며 숲의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습성 때문이라고 한다. 옆에 있는 나무가 불편하지 않도록, 풀이나 작은 나무들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 안에서의 인간 관계도 숲 속 생태계로 생각하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불편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피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제자리를 지켜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간격'을 지키는 게 일상의 삶 속에서 제법 소리 없이 지켜지는 원리인 것 같다. 머리에 열이 날 때 복용하는 해열제도 시간 간격을 맞추듯이.


조선의 지도꾼 김정호는 국토를 남북으로 백이십 리 간격으로  22첩이 되게 분할하고 동서는 팔십 리 간격에 따라 여러 절로 쪼개어 작업했듯이. (백성이 필요한 판만 분리해 가볍게 소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간격이 좋은 의미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집단 안에서 조금이라도 힘의 차이로 발생되는 간격은 갑질로 둔갑되기도 한다. 세대 차이로 생기는 문화적 간격은 갈등으로 빚어지기도 한다.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가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간격을 인정하지 않을 때 불편한 간격이 생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의 욕망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개인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간격을 인정할 때 있다고 말한다. 그 간격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약 1미터 정도라고 한다. 1미터 범주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낀다고 하니 잘 새겨 두어야겠다. 1미터 개인의 간격은 행복을 구분하는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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