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만들지 않으면 어려움도 없겠지만

교장일기

by 이창수

복지부동이라는 말은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어진 일이나 업무를 처리하는 데 몸을 사리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나타날 때 쓰인다. 소극적인 태도를 풍자할 때 사례로 든다. 일을 만들어 괜히 소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을 만들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확률이 확실히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예상치 못할 일을 감당해 내겠다는 용기를 수반한다. 모험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구도심 지역이다. 새로 설계된 도심지에는 전봇대가 없다. 대부분 지중화 작업으로 땅속에 들어가 있다. 보기에도 깔끔하다. 도시의 경관이 시원하게 탁 트여 보인다. 봄철에는 발생하는 화재에도 비교적 안전하다. 전기 화재가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를 예방할 수 있다.


반면에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구도심 지역은 전봇대가 우후죽순처럼 곳곳에 심어져 있다. 이쪽저쪽 연결되다 보니 전깃줄이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복잡하게 보인다. 전깃줄만 보더라도 오래된 동네임을 한 분에 알 수 있다.


위험성이 뒤따른다. 전기 사고에 노출될 수 있고 갑작스러운 정전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고가 사다리차가 지나갈 때 위험천만한 일도 일어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전제하에 지중화 작업을 감행해가야 한다. 공사 기간이 상당히 걸리는 작업이기에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생계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학교장의 역할도 그렇다. 학교가 당면한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 처리하자니 손댈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을 처리하자니 저것이 걸리고 저것을 처리하자면 이것이 마음에 걸리고. 그런 고민들을 하루 이틀 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훅 지나간다. 결국 나중에 누가 하겠지라고 미루게 된다.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것보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속 편한 선택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법과 매뉴얼, 원칙과 관행을 쫓는 것은 복잡해 보일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로 관통된다. 그냥 현행처럼 하면 된다,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된다, 뜸을 들이면서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며 하면 된다는 말로 귀결된다. 시간에 쫓기듯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반드시 커다란 벽에 부딪치게 된다.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책임을 면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위축되고 처음 가졌던 용기가 점점 사그라진다.


"나중에 이 교장이 힘이 빠져 풀이 죽을까 봐 걱정이야"


주위에 선배 교장 선생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나를 보고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많이 의아해하셨다고 한다. 초임 교장이라서 그렇지, 젊음의 패기가 너무 선을 넘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격려 차원에서 힘내 보라고 덕담을 건네신다. 물론 나를 좋게 봐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언짢게 보시는 이들도 많을 거다.


일을 만들지 않으면 어려움도 없겠지만 삶이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사고(事故) 치지 말아야겠지만 사고(思考)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때도 바람처럼 지나가겠지만 훗날 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무모한 행동이 어떻게 평가될까 궁금해진다.


#신기하고_동화같은_학교

#신동으로키울게요

#삼척_신동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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