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창한 날들 Nov 22. 2022

정다운 이웃이 되는 방법

따뜻한 말 한마디

사진 pixabay



친구에게


안녕?

우리 건물에 입주한 걸 축하해.

너와 가까이 지내게 되어 든든하구나.


나는 작년 9월에 입주했어.

누구하고도 금세 친해지는 나였지만, 이곳은 달라 보였어.

옆 방의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는 원룸이나 고시텔에서 지내야 처지에 맞았을 내가

품격 있는 고급 오피스텔에 입주했으니 모든 게 조심스러웠던 걸까.

이웃 주민과 잘 사귀지도 못한 채 건물 바깥의 일에만 열중했어.

가끔 먼저 웃음 눈빛을 보내 주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어.

"왜 웃지?"

내가 먼저 그 분과 다른 분들에게 인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

내가 먼저 떡을 돌리고 저 몇 호에 살아요 했다면 달랐겠지.

달랐을 거야.

얼마 전 네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지.

"네가? 정말로? 십 분 만에 사람을 사귀어 버리는 ENFP가 그랬단 말이야?"


그래.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그랬다고.

집에 들어와 글을 쓴 다음 문 꼭 잠그고 있다가 얼른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곤 했어.

아는 이가 없으니 이 공간이 숨 쉬기 힘들어지더라.

몇 달을 겉돌던 나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싶어 주위의 건물을 보러 다니기도 했어.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깨달았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여기서 못 견딘다면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삼 개월쯤 보내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이브 밤이었어.

혼자라서 울적한 밤, 얼마 전 알게 된 칵테일 바에서 홀로 술을 두 잔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우리 집(혼자 사니 '내 집'이라 해야 할 텐데 아직도 우리 집이라고 하는 습관어가 고쳐지지 않네. 그래도 우리 집 어감이 더 좋은 건 뼛속부터 한국인임을 인증하는 거라고 해 두자.) 손잡이에 크리스마스 리스가 걸려 있는 거야.

지름 20센티미터 정도의 크지 않은 리스였어.

주변을 둘러보았지.



크리스마스 리스



초록색 쪽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


메리 크리스마스



내가 먼저 건네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기만 했는데 그제야 깨달았어.

다음 날부터 용기 내어 행동을 바꿨어.

어떤 분에게는 다정한 눈인사를, 어떤 분에게는 주머니 속에 있던 사탕 한 알을 건넸지.

아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어.

이 공간과 사람들에 적응하기 시작한 거야.

너의 적응기는 나보다 빠르기 바라.

이 공간에서 행복한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마음을 열기 바라.





브런치에서 정다운 이웃이 되는 방법


이 글은 '창창한 날들'이 브런치에 적응하기까지의 일 년을 브런치 오피스텔 입주 적응기로 바꿔 써 본 것이다.

실은 브런치에 입성한 뒤 석 달이 지나도록 내 글만 열심히 올렸고, 누가 봐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내 글집은 깊은 숲속 창고일 뿐이었다.

내가 먼저 다른 작가님들의 글집을 방문하고 라이킷 누르지 않고서야 누가 내 존재를 알 리 있겠는가.


그런 내가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 것은 한 작가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내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댓글로 자취를 남겨준 작가님이다.

그 분은 내 첫 지인(오프라인에서 이미 나를 알던 구독자 친구들을 제외하고)이자, 손님이자, 글 친구, 선생님이 되었다.

이혼의 자책감과 아픔에서 허우적대며 어디 나를 좀 인정해 줄 사람, 다정하게 봐줄 사람 없나요, 하고 외로움을 탈 때 작가님의 환대는 눈물겨웠다.

내 글의 첫 댓글러인 작가님은 다른 이들의 글을 정성스레 읽어주기, 반응하기가 서로를 살리고 키우는 방법임을 배우게 해 준 분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댓글을 자주 남겨주시는 작가님도 잊을 수 없다.

구독자 많아 새 글 알림도 계속 울릴 텐데 일부러 찾아와 "글 더 없느냐" 물어봐 준 날 나는 날아오를 듯 들떠 지냈다.

어떤 글로 작가님의 주문에 제대로 응답할까, 고민은 되지만.

작가님의 꾸준하고도 정성들여 쓴 글과 그 분이 소개한 책들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분의 이후가 무척 기대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구독을 누른 작가님들의 이름이 스쳐간다.

자꾸 그 작가의 방을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그 작가의 처음을 알고,

그 작가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 아닐까.

작가가 함께하는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꾸준한 자세로 신뢰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거기에서 애정이 생기고 관심이 이어지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부족하다.

매주 글 두 편 이상을 꾸준히 올리겠다는 다짐은 수준이 영 못 마땅하다는 핑계로 지연되어 왔다.

앞으로는 꾸준함의 자세로 나아가 보려 한다.

쓰기도, 읽기도, 반응하기도, 사랑하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뜨는 브런치북> 1위에 올랐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