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에서

by 창창한 날들


매일글쓰기 밴드 '복면글왕'에서는 매주 월요일 주간 미션 시제로 글을 쓴다.
이번 주에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누구를 살리겠는가?'라는 시제를 내놓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살리고 싶다는 글벗, 평생 일만 하다 돌아간 엄마를 살리고 싶다는 글벗, 평생 홀로 잠을 청해온 엄마를 위해 젊은 날 돌아간 아버지를 살리고 싶다는 글벗, 동료 암환자였던 꽃다운 이십 대의 아가씨를 살리고 싶다는 글벗까지...
'살리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차오르지만, 되살아난 그가 살아갈 아름다운 일상을 상상하는 것으로 조금은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본캐와 부캐 두 인격으로 글을 쓰고 있다.



본캐의 글


여덟 살,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난 친조카들을 살려내고 싶다.

작은엄마인 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한 덕에 그 애들이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떠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친조카지만 외종질들보다 몇 배로 자주 만나면서 정이 많이 들었고, 우리 아들은 큰엄마를, 두 애들은 작은엄마인 나를 잘 따랐다.


2월 28일은 한 날 한 시에 사고로 세상의 빛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 그 애들의 14주기이다.

성장했다면 스물둘, 스물셋 꽃다운 나이였으리라.

신께선 왜 그리 바삐 아이들을 데려가셨을까.


이모도 아니고 작은엄마가 조카들을 사랑하면 얼마나 하기에 하고 의아해할 분도 계실 것이다.

숨은 이야기를 다 꺼내놓을 수 없고, 나는 그 애들한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나의 사랑을 바랐던 아이들을 더 사랑해 주지 못해서, 미워했던 마음을 가졌던 내가 한심해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돼 주지 못했어서...


조카들은 두 가족이 만나기 며칠 전부터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더 빨리 만나고 싶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만나서도 진하게 엉겨 붙어 놀다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사사건건 짜증을 내곤 했다.

시댁 행사의 피로감이 쌓인 데다 어른들의 갈등이 얽히고설켜 그 아이들의 징징거림을 마냥 받아줄 수 없는 기분으로 치닫는 때가 종종 있었다. 가족들이 헤어지고 난 후 그 애들의 부모를 마뜩잖게 여기는 감정이 덧붙어서 아이들까지 미워하는 마음의 씨앗을 키웠다.


요 며칠 왜 이렇게 스산한가, 날씨 탓인가 했는데, 아이들이 간 날인 2월 28일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작은엄마 이것 좀 보세요."

해사한 얼굴로 그림도 보여주고, 블럭 쌓은 것도 보여주고, 묘기도 보여주며 자꾸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너희들. 이제는 모든 행동을 꼼꼼히 보아 줄게. 너희가 하는 말 눈 마주치고 들어 줄게. 너희가 크는 모습을 응원할게.

강산아.

강희야.

너희들을 잊지 않고 있단다. 미안해.

그곳에서는 많이 웃기를 바라.




부캐의 글


엄마는 열세 살부터 돈을 벌었다. 이십 대에 홀로 되신 어머니와 어린 동생 둘을 부양해야 하는 소녀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시작해 예순 넘어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평생 동안 앉은자리에서 편하게 밥을 들은 적이 없이 단 5분 만에 선 채로 식사하며 일하는 삶이었다. 주위에서 그녀를 두고 강철 위장,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2016년 11월부터 엄마는 배가 살살 아파 동네 병원에 갔다. 큰 병원에 가 보라는 소리를 듣고 동생을 앞세워 종합병원에 갔다가 들은 진단이 간암 말기, 삼 개월이라는 시한부였다.

입원도 시켜주지 않는 병원을 나와 한 달은 한방병원에서, 한 달은 간암 전문 펜션에서 치료를 받았다. 동생이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낸 그곳들은 말기 암환자를 몇 년도 더 살게 하였다고 홍보했다. 우리 삼 남매는 어렴풋한 희망을 가지고 엄마를 먼 홍천 펜션에 모셔다 놓은 한 달 동안 매주 엄마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가 엄마 곁을 지켰다.

대입과 고입을 치러야 하는, 학원으로서는 한 해의 농사에서 얼마나 추수를 많이 하느냐 하는 중요한 시기라 그 시간을 빼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말기' 진단을 받은 엄마가 언제 삶을 마감할지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는 때였으므로 매주 방문하였다.


엄마는 이듬해 1월 말 설 연휴 첫날에 쓰러진 채 다시는 의식을 찾지 못하였다. 진단을 받은 지 단 두 달만이었다. 엄마와 설을 함께 쇠려고 펜션에 간 날 대자로 쓰러진 엄마는 임신부처럼 배가 부풀어 있었다.

병원에서 딱 육일 버티던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엄마..."였다.

눈을 꽉 감은 채 나직이 부르던 '엄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나는 나의 엄마에게 가지 말라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울고 있는데 너무 아팠던 엄마는 당신의 엄마를 부르며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그만 놓아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더 이상 엄마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엄마를 살릴 수 있다면 사계절 동안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내 집에 모셔다 놓고 편안하게 밥을 잡숫게 하고 싶다. 좋아하는 콩나물과 배추김치의 푸른 배춧잎을 숟가락에 얹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과를 베이킹소다에 씻어서 껍질째 드실 수 있게 내어드릴 것이다. 예쁘게 쓰고 싶어 했던 한글 쓰기도 봐 드리고, 영어 단어 연습하는 것도 함께해 드리겠다. 이메일 쓰기 잊어버렸다고 미안해하던 엄마에게 카톡을 가르쳐 드리면 더 어렵다고 하려나. 어디를 모시고 가도 좋다 좋다 그러던 엄마와 팔짱 끼고 여기저기 걷고 싶다.


"엄마, 문득 전화를 하면 엄마가 '대통령보다 더 바쁜 우리 딸'하고 받을 것 같아. 새로 이사 온 이곳에 엄마가 다녀간 적도 없는 이곳에, 집에 돌아와 허전할 때면 엄마가 어느 방에선가 "밥은 먹었니?"하고 나올 것 같아. 엄마가 늘 내 곁에 있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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