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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21. 2023

한강, 카크닉

한강 연재

거룩한 글쓰기 시즌 8 - 2023년 9월 21일 (22일차)




지난주에 친정에 들렀다 안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강 뚝섬 공원에 들어가 해넘이를 보았다.

친정 식구들과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대부분 강북에 살아서 그들을 만나려면 꼭 한강을 건너야 한다. 덕분에 추억도 많다.

한강에 얽힌 얘기를 하자 치면... 대학 새내기 때 친구가 소개한 남학생이 동호대교 아래에서 이문세의 '소녀'를 불러준 적도 있었고...


강북에 다녀올 때마다 특히 해질 무렵, 한강 공원이 적힌 갈색 표지판을 보면 흥분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지체 없이 진입하곤 했다. 아무 방향이나 걷다가 아무데고 앉아서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어두워지면 안산으로 돌아왔다.

강북 사는 친구에게 그 얘길 했더니 친구는 자기를 데려가라고 했다.

"서울 살면서 한강에 가서 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어. 이번엔 나랑 가자."

아마 나 혼자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마음이 고운 친구라서.



그래서 오늘, 늦은 오후에 친구와 난지 한강 공원에서 만났다.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각자 준비해 온 샐러드, 감자, 토마토, 김밥, 포도를 내놓으니 차림이 풍성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던 것까진 좋았는데 송충이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강물 가까이의 시멘트 의자 위로 이동해 돗자리를 새로 깔았다.

해는 지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친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좋다 좋다" 하였다.

먹구름이 심상치 않게 짙어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는 안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안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굵은 빗줄기가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다.

우리는 돗자리를 머리 위에 쓰고 차까지 빠르게 걸었다. 작년에 내 차가 된 카니발로 카크닉을 해 볼 때가 언제 올까 했는데, 오늘 소원성취한 것이다.

그래도 친구가 싫어할까 싶어 걱정했는데, 친구는 그런 기상 변화를 더 즐거워했다.

"창창이랑 놀면 늘 상상치 못한 전개가 돼. 너무 재밌어."

한 시간 이상 비가 쏟아지고 천둥 치고 벼락이 쳤지만, 우리는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즐겼다. 뒷문을 열어 놓고 돗자리를 그 위에 얹어 차양을 삼았다.

친구가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고 투명 텀블러 안에 넣자 간이 조명기가 만들어졌다.

얼음물로 커피믹스를 타서 마셔도 맛있었다. 남은 포도를 한 알씩 입에 넣으며 어둠이 내려앉는 걸 보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깔깔깔 수다를 떨다 보니, 뱃고래도 작은 두 사람이 똑같이 허기가 졌고 한강의 별미라는 라면을 먹어보기로 했다.

친구가 라면을 사러 간 동안 기다리며 또 하나의 추억이 된 오늘을 기록한다.

- 거룩한 글쓰기 시즌 1-#92일 차





거글 친구들 안녕?

위 글은 2021년 8월 16일, 친구와 한강에 놀러 간 날 쓴 글이야.

친구는 이후 거룩한 글쓰기 시즌 2에 합류해 5까지 함께했던 쏭쏭이고.


내가 한강앓이에 빠져든 것은 남편과 헤어지기 훨씬 전부터야.

친정 가는 길, 오는 길이 한강을 반드시 지나쳐야 하니까 꼭 들르고 싶은데 그 남자에게 그런 운치를 누릴 만한 여유가 늘 없었어.

헤어지고 나서는 아무 때나 내 맘대로 달려갔지. 싱글의 자유가 그런 것 아니겠어.


어제 영영(거룩한 글쓰기 멤버-이하 거글)과 대화하다가 영영이 묻는 거야.

"창창은 한강을 왜 그렇게 좋아해?"

군산 사람인 영영은 한강을 오롯이 즐겨보기는커녕 가 본적이 없다니 얼마나 입체적인 공간인지 모를 거야.

나는 자칭 한강 사랑꾼으로서 거글 시즌 1~3에 쓴 글을 퍼오겠다고 약속했지.

영영과 이번 시즌에 처음 참가한 친구 중 시즌 4부터 들어온 멤버들은 보지 못한 글일 테니 공유해 볼게.

이름하여 한강 연작!

앞으로 한강 다리를 모두 건너고 한강 주변의 이야기들을 모아 글로 쓰고 싶어. 다리 순서도 외우고 싶은데 기억력이 받쳐 줄지 모르겠어.ㅎㅎ

그나저나 한강 다리는 모두 몇 개일까?ㅎ(검색하지 말고 댓글로 알아맞혀 볼래?)




평어로 대화하는 모임 몇 개가 있는데 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서 새 모임이 시작되면 제안하는 편이다.

이번 거룩한 글쓰기 시즌8 시작에 앞서 '평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댓글을 평어로 쓰자는 것이다. 어색해서 높임말을 섞어 쓰는 이들이 있지만 좀 더 친밀감이 느껴진다는 피드백을 받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글도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느낌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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