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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22. 2023

슬픔을 한강에 묻고

한강 연재

2023년 9월 22일 - 거룩한 글쓰기 시즌 8 (23일차)




엄마가 간암 말기를 선고받은 지 두 달만인 2017년 1월 말에 쓰러져 가수면 상태에 들어갔다.

임종하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 강북의 원자력 병원으로 달려갔다. 숨이 남아있엄마의 손을 잡고 속울음을 울다가 새벽이 되면 안산으로 돌아와 일을 했다. 일주일 동안 엄마를 보러 한강을 스무 번쯤 오간 것 같다.

방학 특강 수업으로 몹시 바빴고, 대입의 승패에 따라 학원의 사활걸어야 하는 시기였다.



외곽순환도로, 내부순환도로, 서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강변북로, 올림픽 대로 어떤 길로 가도 원자력 병원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한강 대교 역시 늘 차량이 진을 치고 정체거나 서행 중이었다.
넘실대는 물이랑과 차게 뜬 달과 고층빌딩과 아파트들, 찬란한 다리 불빛을 보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지면, 엄마를 왜 벌써 데려가시려 하느냐며 창밖의 한강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눈앞을 가린 눈물범벅으로 더 이상 운전할 자신이 없어 갓길에 대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병원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씻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일주일 째 되던 날 밤새 엄마 곁에 있다가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수업을 나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문자만 보내던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와야겠다."  


장례식이 끝난 뒤 홀로 계신 아버지를 뒤로 하고 안산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난지한강공원에 차를 주차하고 무작정 걸었다. 넘실대는 물이랑을 따라 걷다가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지나가사람들이 본다는 것도 잊은 채 엉엉 소리 내 울며 걸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영락없이 넋이 빠진 여자였다.

걷다가 걷다가 강물 가까이 다가가 주저앉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울다 보니 목도 쉬고 선득 찬바람에 몸이 으스스 떨릴 때쯤 정신이 차려졌다.

차분해진 마음에 설핏 해 지는 풍경이 보였다.



대학 새내기 때 친구의 소개로 만난 학생이 원효대교 아래에서 이문세의 '소녀'를 불러주던 날이 떠올랐다. 이 순간에?엄마를 다시 만나지 못하는 슬픔으로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다가 추억이라니. 붉은 노을 아래 선명했던 그 학생의 실루엣. 어쩜 그렇게 용감하게 부르던지. 저음의 목소리의 그 학생은 노래를 잘 불렀다. 나를 보는 눈빛에 쑥스러웠지만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고 저녁놀이 보는 날 가끔 떠오르는 걸 걸 보면 가끔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이 힘겨운 순간을 살게 하는가 보다.

한강 대교와 동작 대교를 걸으며 서로의 집까지 바라다 주던 대학 때 친구들도 떠올랐다.

한강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 살아났다.

양화대교를 건너 선유도 공원을 가면 유튜브에서 테마 음악의 배경 사진으로 나오는 풍경이 펼쳐진다. 구들과 다투고 토라져 선유도 공원을 혼자 걷다가 한강 바투 있는 안쪽의 정자에 앉아 글을 쓰며 내 모리지 같은 마음을 돌아보았다.

친구랑 뚝섬유원지에서 차박하고 건너온 청담대교도 있다.

대학 때부터  베프이던 친구네 집에 가려면 꼭 지나야 했던 행주대교. 지금은 만나지 못하게 된 친구 때문에 행주대교를 피한다.

친정에 오갈 때 X와 다정하게 수다 떨기도 하고 처절하게 싸우기도 하며 건너던 성산대교. 우리의 싸음 만큼이나 지긋지긋한 정체 현상...



2016년에 소설을 배우러 합정동에 가느라 건너던 마포대교는 어떤가. 그날의 합평작을 떠올리며 합정동 문지사에 출석했고, 합평을 통해 배운 것들을 내 소설에 어떻게 적용할지 구상하며 안산으로 돌아왔다.
상암동의 아들 오피스텔에 오가느라 우리 세 식구가 웃음꽃 피우며 건너던 가양대교도 있다.



X와 헤어지기 전에는 한강 공원에 들른 적이 었었는데, 솔로가 되고 나서는 한강의 저녁놀을 보고 싶어 일부러 찾아가곤 한다.

입 벌린 채 넋을 놓고 한강을 바라보면 강 건너편에 불빛들이 퍼지며 장관을 이룬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한강이 무슨 죄인가. 한강 대교가 무슨 죄인가.

애먼 데다 화풀이하고 싶었던 나는 오히려 많은 날 한강의 물이랑에서, 한강의 넉넉함에서 위로를 받았고 슬픔을 내다버렸다. 한강의 언저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씻겨내려갔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한결 가벼워지곤 하였다.

흘러가는 물결에 인사한 뒤 돌아갈 곳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나의 차는 서서히 한강 공원을 빠져나온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문학사상>(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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