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판의 끝까지 뻗은 회색빛 건축물들과 크레인이 미래 도시인 양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건설현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제2 신도시 입주가 시작됐고, 예주네 부부가 입주하게 될 제3 신도시가 49층 중 20층 정도 올라갔다. 성훈이 예주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어질어질하고 울렁거려. ……지금 사는 우리 동네가 아담하잖아.”
성훈은 흡족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아파트 건설현장에 예주를 데려올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30년 넘은 연립에 비할까. 여긴 1 신도시부터 3 신도시까지 10만여 세대가 입주할 예정이야.”
성훈은 건축회사 관계자인 양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당신, 대단지라 겁나?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가?”
시골이란 예주가 어릴 때 자랐다는 감골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도시의 고등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 나오기 전까지 골짜기와 능선으로 연결된 동네들을 제집처럼 뛰어다니던 예주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꿈에서 감골의 시내와 너른 벌판과 햇살, 야트막한 지붕들을 보곤 한다.
예주는 세 식구가 주저앉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두려웠으나 성훈이 하는 말에 고개만 주억거렸다. 허리에 금이 갈 것 같은 통증이 일었으나 최대한 인상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집 근방에 있는 학교에 점심을 배식하는 아르바이트를 나간 지 5년 차인 예주는 일이 끝나면 태권도장에서 놀고 있는 민재를 데리고 귀가했다. 밤 열 시부터는 근처 아파트 2층 상가에서 두 시간 정도 복도 청소를 했다. 주중에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대체로 민재는 일찍 잠들었다. 어릴 때부터 CD로 동화를 들려주면 아홉 시부터 잠이 들 정도로 순한 민재였다. 주말이 되면 예주는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습관처럼 눈이 떠졌다. 잠시 이불속의 아늑함을 느껴보지만 아침을 만들고 청소하고 점심을 먹고 일주일 장을 본 다음 저녁을 만들어 먹고 민재의 숙제를 도와주다 잠들었다.
예주와 성훈은 녹초가 되어 새 소파에 기역자로 누웠다. 카우치가 있는 4인용 소파였다. 예주는 허리를 손아귀로 꾹꾹 누르며 한의원에서 뱃살을 빼야 요통을 줄일 수 있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원장은 당뇨와 혈압 수치도 고위험군이라 경고하면서 힘든 일은 되도록 하지 말고, 살살 걷는 운동이나 수영을 하되,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민재야, 이따 엄마 허리 좀 밟아 줘. 엄마가 얼마 외상 졌어?”
“오키 오키. 달력에 써 놨지.”
“이 녀석 넌 엄마가 아프길 기다렸냐? 당신 오늘 무리해서 그래.”
“모두가 무리했는데 뭘.”
“그나저나 집안이 좀 썰렁한데, 가구를 더 들여놓는 건데 그랬어. 장식장 놓고 현관에 콘솔 놓고, 안방에 당신 화장대도 놓고 요즘 유행한다는 건조기도 사고 공기청정기도 들여놓고 말이야.”
“이 아파트에 수납공간이 많은데 뭘. 가구나 가전이나 이것저것 들였다 나중에 작은 집으로 이사라도 가게 되면 어쩌려고.”
“말이 씨가 된단 말도 있는데, 더 큰 집으로 가면 갔지 작은 집으로 갈 생각을 왜 해.”
“그래, 엄마. 넓으니까 좋긴 하잖아. 물론 내 친구들이 사는 연립이 최고지만.”
민재가 앞 베란다 쪽에서 부엌으로 슬라이딩을 하더니 히죽 웃었다. 새로 산 냉장고의 쇼케이스를 여닫는 재미에 주스, 우유, 보리차를 연이어 마신 민재는 떠먹는 요구르트를 꺼내며 말했다.
“와, 우리 집에 먹을 거 진짜 많다. 엄마 아빠도 드실래요?”
“우린 됐어. 언제 우리 아들이 열네 살이나 먹었지. ”
점심때는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중화요리를 먹고, 저녁때는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은 게 더부룩해서 예주는 원을 그리듯 배를 쓰다듬었다. 결혼 전에 생긴 아이를 두 번이나 낙태한 뒤에 민재 위로 연이어 사산해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예주는 조금만 신경 쓸 일이 있어도 배앓이를 했다.
5.
두 달 동안 매주 집들이를 했다. 성훈의 현재 회사 직원들과 이전 회사 동료들, 예주의 초중고 친구들, 대학 동창, 마지막으로 성훈의 고등학교, 대학 동문 순서였다.
"경남 사천 출신이 신도시에 4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게 동창들 가운데 흔치 않다고."
부부는 성공한 축에 속했고, 집들이는 그런 걸 과시하기 위한 중요한 의례였다.
남자들은 서재가 부럽다며 거기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여자들은 집안의 곳곳에 걸린 명화에 환성을 질렀다. 고급스럽다, 갤러리 같다, 커피 마시는 기분 좀 나겠다. 고흐나 르누아르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영국 화가인 프레데릭 모건의 작품도 몇 점 있었다.
소파 위에는 엄마와 세 아이의 피크닉 풍경 그림을 걸었고, 맞은편의 책장 옆에는 엄마와 시소놀이를 하는 세 꼬마가 깔깔거리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하거나 시소를 타는 그림, 그네를 뛰기도 하고 강강술래를 하는 그림들도 있었다. ‘사과 따는 풍경’이라는 그림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그림을 구입할 때 다이어리의 '사과 따는 풍경'이라고 써 두었던 것이 그림 제목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급했던 걸까. 예주는 기억을 쥐어 짜내 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집들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때부터 신용카드 고지서가 압박하기 시작했다. 예주가 고지서 뭉치를 들고 한숨을 쉬자 성훈은 또래들보다 인생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했으니까 기회비용이 드는 것 아니겠느냐며 예주를 안심시켰다.
예주는 악몽에 자주 시달렸다. 어느 날은 뾰족한 돌멩이들을 밟아 피투성이가 된 발로 한없이 걷는 꿈을 꾸었고, 어느 날은 돌멩이들이 아기처럼 울부짖었다. 자신의 몸이 동강이 나는 모습을 보며 악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가쁘게 숨을 쉬다가 거실로 살그머니 나갔다. 거실을 빙 돌다 소파에 앉았다 누웠다 다시 앉았다 누웠다. 맞은편 아파트 동이 달을 막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오백 밀리 캔 맥주를 꺼내 식탁 앞에 앉았다. 다이어리의 맨 뒷장을 펼치자 아홉 자릿수의 대출금과 이율, 원금 상환 날짜를 보았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내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평생 가도 손에 쥐지 못할 숫자가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는 것만 같았다. 오소소하게 몸이 떨렸다. 예주는 다이어리를 덮으며 생각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길은 열릴 터이다.
마지막 집들이 날, 밀푀유나베 밀키트, 잡채, 새우튀김과 야채 베이컨말이를 준비했다. 이제 끝이란 생각에 후련했지만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민재는 파자마 파티에 가져갈 닌텐도 상자를 배낭에 집어 넣었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연립의 친구들에게 가려면 팔 차선 도로를 두 번이나 건너야 했는데, 위험하니 버스를 타라고 해도 듣지 않았다.
예주는 잡채를 담은 밀폐 용기를 쇼핑백에 넣은 뒤 민재에게 건넸다.
“자전거 바구니에 잘 넣어. 그리고 고민재, 미안해. 오늘이 집들이 끝이야. 약속해.”
“더 해도 돼. 나 정말 괜찮은데. 덕분에 진수도 만나고 게임도 하니까 좋아.”
“그래도 선우 부모님께 엄마가 너무너무 죄송하지.”
“에이, 선우 아줌마가 나 엄청 좋아하시잖아.”
“에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도 힘들고 너도 힘들고.”
“지금은 일상 아니고 뭐야? 하여튼 갔다 올게.”
민재가 현관문을 열다 말고 뒤돌아서 예주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내일 갔다 와서 엄마 허리 밟아줄게. 외상 7천 원 있다. 잊지 마.”
“운동화나 신어. 남의 집에 가는데 삼선슬리퍼는 좀 그렇다 얘.”
민재는 운동화로 바꿔 신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 예주는 크게 숨을 내쉬고 준비된 음식들을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얼마 뒤 성훈과 대학교 동아리 동기들이 도착했다.
6.
남자들 네댓 명이 올 거라더니 여자가 한 명 들어왔다. 원래 여자 동창이 셋 있었다고 했는데 어느 해에 한 명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고, 또 어느 해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장례식에 다녀왔다. 예주는 그때 민재가 뇌수막염으로 입원한 상태여서 조문을 가지 못했다. 마지막 한 명이 정고은이었다. 정고은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고, 숫기가 없어 보였다. 예주는 피부가 뽀얘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정고은을 보며 미혼이라선지 처녀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성훈이 정고은이 샀다며 케이크를 들어 보였다. 어찌나 헤벌쭉 웃고 있는지 속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성훈의 뒤에 바짝 붙어 들어온 덩치 큰 남자가 양주 상자를 예주에게 건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동창 홍준깁니다. 성훈이에 대해선 모르는 게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 분 결혼식 때 제가 한국에 없었습니다만 이 친구가 그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전 공사가 다, 망했고요. 뭐 최근까지도 한국에 없었습니다만."
홍준기가 성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껄껄껄 웃었다. 홍준기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성훈은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예주는 홍준기가 귀국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성훈은 예주의 시선을 피해 거실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김 교수가 홍준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제수씨께 결혼식에 늦어 죄송합니다 해야지. 제수씨, 큰집 장만 축하합니다. 좋은 일로 방문하게 돼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김 교수는 민재의 돌잔치를 할 때보다 체구가 단단해졌다. 운동으로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창들은 김 교수를 ‘국립대 교수’라고 했고 그때마다 김 교수는 지방대야 지방대, 하면서 능청을 떨었다. 교수라고 불리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김 교수는 술이 들어가자 보직 교수들이 처장급에게 아첨하는 행태를 아느냐 묻는 것으로
"손발이 오글거리는 그런 짓 아무나 못한다 정말."
작년 송년회에 다녀온 성훈은 김 교수를 마뜩잖아했다. 조교의 도움으로 큰아들을 자사고에 보냈다는 얘기를 하며 의뭉스러운 놈이라고 했다. 그후 성훈은 민재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부쩍 많이 했을 뿐 아니라 예주에게도 학원을 좀 더 보내라고 다그쳤다. 예주는 땡빚을 내겠느냐는 말을 삼켰다.
집안을 둘러본 친구들은 소파 주변에 모여 앉았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김 교수와 정고은이 나란히 앉고 홍준기와 성훈이 맞은편에 앉았다. 예주는 거실로 오가는 동안 정고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정고은은 말수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