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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an 14. 2024

고모, 냄새 좀 어떻게 해 보랑게요

무안 시골살이 적응기-청국장은 좋아하지만...




1월 8일, 무안으로 출발한 시각이 오후 12시였다. 예상 도착 시간이 3시간 30분이었으나 졸음쉼터 세 군데, 휴게소 세 군데에 들러 인공눈물을 넣고 쪽잠을 자느라 6시간 동안 내려갔다. 


무안군 이정표가 보인 뒤부터 하늘이 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름다운 저녁놀을 배경으로 멀게 고모 댁의 미남이가 보였다.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앞발을 들고 선 채 반갑게 짖던 미남이 생각에 노곤함이 사라졌다. 미남이는 지난 12월에 자기를 바다까지 산책시켜 준 나를 기억할까.


와우!

미남이 맞은편에 개 한 마리가 더 보였다. 진돗개로 보이는 하얗고 복스러운 강아지였다. 이름이 '쨍'이라고 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왼쪽: 미남이(생후 3살)/오른쪽: 쨍(생후 5~6개월)


야호!

두 녀석과 날마다 산책할 걸 생각하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12월엔 만조 시간을 못 맞추어서 썰물만 보다 갔지만, 이번엔 바닷물의 출렁거림을 실컷 볼 다.


12월의 무안 바닷가




거실에서 창을 연 순이 고모가 환하게 웃었다.

"고모 저 왔어요."

"음마, 운전해서 왔냐?"

고모가 기특해하는 표정 반겨주셨다.

현관문을 열었다.

앗! 으악!


섬광처럼 떠오른, 12월의 기억. 청국장 냄새인지, 그 비슷한 냄새가 훅 코를 엄습했다. 

지난 12월에 냄새 때문에 삼일이나 잠을 못 잤으면서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지?

신발을 벗고 거실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발에 끈적이는 게 밟혔다. 아, 슬리퍼 가져왔어야 했!


고모의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가려져 집안 청결 상태를 잊었던 것. 고모가 너무 좋은 분이어서, 고모가 내게 먼저 제안하신 말씀이 너무 고마워서, 그만 다 잊어뿌렀다.


지난 송년회 때 셋째 고모가 틈만 나면 물휴지로 집안 구석구석을 으며 다니던 장면, 양념통에 덕지덕지 앉은 양념이 묻은 물때, 화장실에 용변 보러 들어가면 변기에 무엇인가 묻어 있어 휴지에 물을 묻혀 닦고 아야 했.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았는데, 어쩜 이렇게 까맣게 잊을 수가...




영화 <기생충>에서 내가 가장 강렬하게 공감하고 안타까워한 것은 바로 '냄새'에 관한 묘사였다. 사장네 가족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기택 가족의 냄새가 그들의 많은 걸 설명해 주었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을 저절로 인상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란 것은 사람의 품격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게 한다.

그런 공간과 사람에겐 '향기'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 걸 보라.


벌써 5년 전 일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을 때였다. 안산에서 한강을 건너 서울을 가려면 차 밀리는 시간대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공부방 수업을 마치고 밤늦게 아버지 댁을 방문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를 막고 싶었다. 그때의 악취를 잊을 수가 없다.

외투를 벗어 안방에 건 뒤 용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갔더니,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화장실과 안방 창문을 연 뒤 아버지 곁으로 갔다. 아버지는 거실에 깔려있는 이부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웃으셨다. 


딸이 반가워 웃고 있는 아버지에게 나는 웃어드릴 수 없었다. 이불자락을 슬쩍 끌어안듯이 당겨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지린내 같기도 하고, 곰팡내 같기도 한 냄새가 버무려진 이불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불을 빨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내 무릎 위에 이불을 다시 덮어 주었다.

"안 추워요."

"입술이 파란데 뭐가 안 추워?"

자꾸만 이불을 덮어주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싱글의 삶에 이제야 긍정의 자세로 적응하기 시작한 아버지의 초췌한 얼굴이 딸을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숨을 최대한 참고,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집에서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아요."

"무슨 냄새? 난 모르겠는데."

"냄새나요. 많이 나요."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아무 냄새도 안 나."

완강하게 부정하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입냄새까지 가세하여...


"엄청나요. 집에 사람들이 오면 뭐라겠어요. 복지사님도 그렇고, 올케 언니 왔다가 도망가면 어떡해요. 딸도 못 참는 이 냄새를 남들이 어떻게 참겠어요."

나는 그만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자꾸 눈물이 나왔다. 가엾은 아버지.


그날 나 때문에 놀란 아버지는 몇 주 뒤에 갔을 때 달라져 있었다. 적어도 당신에게 악취가 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우리 남매들끼리도 대책을 논의해서 화장실 방향제 등 몇 가지 개선책을 내놓았다.

이불은 죄다 세탁을 맡겨서 보송보송해졌고, 입냄새도 훨씬 줄었다. 화장실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다시 순이 고모 댁 이야기로 돌아오자.

현관의 왼쪽에 있는 내가 잘 방으로 캐리어를 들고 들어갔다. 악취가 더욱 심하게 났다.

"너 춥지 말라고 종일 난방 돌렸시야. 돌침대도 뜨끈허게 해 놓고야."

'고모! 냄새는요? 냄새는 왜 해결하지 않으셨어요?'


아름다운 저녁놀, 눈이 시원한 너른 들판, 산책에 맞춤인 이쁜 개 두 마리, 좋은 사람 순이 고모까지 모든 게 갖춰진 무안 시골 생활에 반전 사건이 생긴 것이다.

냄새라는 적!


당장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며칠 전에도 "꼭 와 야. 아버지 잘 챙겨 드리고, 꼭 와야잉." 전화하던 고모에게 오자마자 냄새 운운할 수는 없다.


예민하다, 유난스럽다는 말 듣기를 참 싫어하는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인터넷이 안 되는 문제만 걱정던 터에 이게 웬 날벼락인가.


오해하지 마시라.

나라는 사람이 집안을 엄청 깨끗하게 관리하타입은 아다.

남편과 아들한테 깨끗한 척 혼자 다하고 살았던 내가 만약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고모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싱글이 되고 나서 나에 관하여 견한 것이 내가 무척 게으르고 청결 관리를 잘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순이 고모와 좋은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맛나게 차려주신 건강 밥상 덕에 배부르게 먹었다.


저녁 8시 드라마를 보다 잠드신 고모를 뒤로 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으악...

그날 밤 나는 거의 한숨도 못 잤다. 이불을 덮어도 냄새, 안 덮어도 냄새, 창문을 열고 자도 냄새...




냄새와의 전쟁, 어떻게 될까요?

유난스러운 조카가 되기 싫어 말도 못 하고 진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사일 동안...


고모 댁 현관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



#무안 #시골살이

#한달살이 #고모

#냄새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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