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가 내게 눈치를 줘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책잡히고 싶지 않아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내가 아무 계획 없이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다.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 잘못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친구들이 그렇게 살면 피곤해서 어쩌냐고 물을 때도 있었다.
피곤했다. 그땐 원인을 몰랐다. 그저 삶의 피로일 거라 생각했다.
그 피로감이 쌓여 우울증에 각종 통증을 달고 살았던 걸까.
불가능에 도전했으니 내 몸과 마음의 병으로 돌아왔던 걸까.
그와 헤어지고 나니 많은 것들이 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이를테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틈이나 흠을 보이기 싫어하는 완벽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허허실실 "나도 구멍 많은 사람이에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실은 하나도, 한 구석도 내 빈틈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노력하면 다 될 줄 알았고, 들키지 않을 줄 알았던 것 같다.
혼자 지내면서 아침, 낮, 밤 가리지 않고,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약속을 잡는다.
본업을 그르치지 않는 한 마구 잡는다. 바람난 사람처럼 물불 가리지 않는다.
올 일 년 동안 무수한 만남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지인들뿐 아니라 새로운 강의를 많이 들어서 거기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도 온오프로 만났으니, 직장 생활을 하며 우물 안 개구리로 지낼 때보다 혼자 일하는 요즘 훨씬 폭넓은 만남 속에서 지내고 있다.
이사 오기 전에 친하게 지내던 마실 친구들과도 꾸준히 만나고 있다. 그들과 내가 사는 곳이 바로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다.
올해 1월 1일부터 한 달에 한두 번씩 등산을 했다.
지인들 가운데 100대 명산 도전자들이 있어 덕분에 따라다녔다.
최근에는 먼 데는 못 가고 뒷산에 자주 오른다. ('뒷산'이란 말을 쓸 수 있어 참 좋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는 뒷산, 앞산, 옆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마을이었다. 지금 사는 곳은 뒤로는 산, 앞으로는 갈대습지가 있어, 배산임수인 곳에서 살고 있다. 이것도 헤어진 덕분에.^^)
운동량이 모자라고 신체가 허약할 땐 저 산을 넘다니, 말도 안 된다고 느꼈다.
헌데 친구들이 그리우니까 오르게 됐다. 매번 운전해서 가기는 번거로운데 걸어서 만나면 간단한 그런 맛이 있는 것이다. 마침 친구들도 걷는 걸 좋아한다.
정상에 올라가 그들을 만난다.
처음엔 정상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이젠 20분이면 충분하다.
혼자 오르기엔 우리 집 쪽으로 연결된 산 입구가 으스스하다. 사람들도 별로 안 보인다.
그래도 오를 수 있는 힘은 거기에서 친구가, 때로는 친구들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한 친구가 톡을 해 왔다.
"항가울 고고?"
갑자기 연결되는 약속이 내 일상을 어떻게 틀어놓든 상관없다.
매 순간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므로 누구를 탓하지도 않고, 틀어진 일정으로 인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지면 된다.
이 기분이 참 묘하다.
전에는 약속을 잡지 못하는 것도 남편 탓, 약속을 잡고 총총 귀가해야 하는 것도 남편 탓을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그에게 정말 못된 사람이었다.
올라가는 길, 잔 가지를 쳐내어 이발한 듯 말끔하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서울 사는 친구로부터 마침 톡이 왔다.
무얼 하는지 묻기에 잔 가지를 쳐내어 훤히 뚫린 산길 사진을 전송했다.
친구가 답 톡을 보내왔다.
"오메~가을 나무가 햇빛에 위로받겠네"
이러한 친구의 반응 또한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거든다.
양쪽에서 30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이 있고, 정상 바로 아래에 '감골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그곳은 우리의 마실이자 카페가 된다. 카페 감골정.
200미터도 안 되는 산이지만, 항가울산이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고, 감골정이라는 정자도 있다.
사실 만남 자체가 좋아서, 만남에만 정신이 팔려서 매번 만나는 정자에 이름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당연히 이름을 알 리 없었다.
'감골정'이라는 현판이 있는 줄도 몰랐다.
며칠 전 친구들을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주변 사진을 찍다 보니 현판이 보였다.
'감골정?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니?'
이사 오기 전에도 수년 동안 산 정상과 정자에 수십, 수백 번 올랐는데, 본 적이 없다.
그냥 정자.
전에는 만나기로 한 사람이 늦으면 화가 나던 내가, 요즘은 기다리는 동안의 즐거움 혹은 기쁨을 알게 됐다. 주변을 찍으며 딴짓도 하고, 못 보던 것도 보게 되니 말이다.
참으로 여유 없이, 여유를 주지 않고 살았다. 내게도 남에게도.
친구가 약속한 시간보다 늦을 것 같다고 톡을 보내왔다.
그 친구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 중2와 초5의 남매를 두고 있어 아침이 바쁜 듯하다.
더구나 코시국에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면 엄마가 챙길 게 훨씬 많다고 한다.
나는 이미 정상에 도착했지만, 친구가 올라오는 쪽을 향해 더 걷기로 했다.
'용정'이 보였다.
안내판을 읽으니 이렇게 씌어 있다.
목마른 용이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비상을 꿈꾸는 형세
아기자기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한 연못이라고는 해도 물 한 방울조차 보이지 않아 작은 화단 같다.
용이 물 한 모금 마시고 올라가기엔 그럭저럭 하려나 싶으면서도 너무 작다.
그래도 계곡으로 쏙 들어가 차 소리도 차단되고 사람이 드물어 고요하며, 용정 스토리까지 있으니 주변을 걷는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주는 용정 덕분에 항가울산이 더 정겹다.
용정.
용정 옆 벤치에 앉았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고, 먼 데서 까마귀가 울고, 기운 약한 햇빛이 쪼이는 이곳.
시리지만 신선한 공기와 점점 더 앙상해져 가며 겨울을 앞둔 나무들을 둘러보며 가을의 끝자락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