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들떠

손자 연애에 할아버지가 왜?

by 창창한 날들




아들이 연애를 시작했단다.

자기 말로는 두 번째라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다.

아들은 게임과 컴퓨터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던 아이였다. 동성애 스타일일지도 모르니 각오하자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이성과 연애를 시작했단다. 스물아홉 아들이 전한 연애 소식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가웠다.





며칠 전 저녁 시간에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그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는 흥분된 목소리로 반겼다.

"그~래? 정말로? 아이코 이게 웬일인가."

눈이 감길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반갑냐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전혀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여성을 만난다고 하니까 그렇지. 손주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니, 무척 반갑구먼.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다 들뜬다, 들떠. 어허 참."

"이제 한 달도 안 됐다는데 무슨 손주며느리요... 팔십 드신 아빠가 왜 들뜨신대?"

오후의 수업과 상담에 지쳐 있던 나는 아버지의 호탕한 목소리 덕에 기운이 났다. 실은 요 며칠 나도 아들 생각하면 웃음이 나긴 했다.

"젊은이가 연애를 한다고 하니 국가로서도 반길 소식이지. 늙은이가 생각해도 아주 이쁘다. 봄기운이 막 느껴지잖아. 너도 이제 어른이 된 것이니까 몸가짐 신경 써야 해."

손자의 연애에 국가가 반길 소식이야 늘 나라 걱정하는 분이니 그렇다 치고.

어미인 내게 진짜 어른이 됐다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이냐 물으니 저절로 알게 될 거라 했다.

아버지와 만날 통화해도 뭐 잡쉈냐, 뭐 하셨냐, 어디 걸으셨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는데, 아들의 변화 덕에 아버지와 긴 수다를 나눌 수 있었다.

"어쩐지 트레이닝복만 입던 애가 옷도 깔끔하게 입고, 웬일로 모직 코트를 사 준다고 하니 덥석 받더라고요."

옷 사는 걸 귀찮아하고 그 돈이 아깝다던 아이였으므로 변화가 신기하기만 했다.

"요새 여드름 많던 피부도 좋아지고 1월부터는 운동을 열심히 하더니, 식스팩 보여준다고 상의를 벗어보이질 않나, 조금씩 조짐이 보였어요."

아버지는 신이 난 음성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 사랑하면 더 이뻐지고 멋있어지고 싶잖아. 그래서 평소보다 더 꾸미고 차리고."

"게다가 저한테 얼마나 다정해졌는지 몰라요. 제 몸에 닿으면 질색하던 애가 스킨십도 하고 다정하게 나를 쳐다보지를 않나, 내 눈을 지그시 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거예요. 아무튼 사랑을 하면 주위 사람에게도 따뜻해지나 봐요."

평소에 전화도 안 하는 손자가 처음으로 연애하며 잘 지낸다고 하는 소리에 아무 바람 없이 기꺼워해 주는 아버지를 보니 내가 다 송구하고 감사했다.

이십 대의 연애사에 팔십 노인과 오십 딸이 얼마나 반갑고 즐거운지...




아들은 가족, 친족이라는 틀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었다. 안부전화를 의례적인 절차라며 어떻게든 피했다. 이번 설 명절에도 양가 조부모들께 전화하겠다고 하더니 건너뛰었다.

그러면서도 막상 외가에 데리고 가면 할아버지, 삼촌, 이모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윷놀이든 화투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논다.

"명절에 움직이기 싫었다며?"

아들의 모순된 행동이 의아해서 물었더니 오해라는 듯 정색하며 말한다.

"밀리는 길이 싫고, 척 어른들께 인사한다 생각하면 피곤한 거지. 이모와 삼촌을 친구처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재미있거든."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아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아빠처럼 이른 나이에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거야. 개고생이잖아. 100억 벌어놓으면 자연스레 여자가 줄을 설걸. 그때까진 연애도 안 할 거야. "

스물하나, 스물두에 결혼해 저를 낳고 풍요로움 한번 느끼게 한 적 없이 키웠다. 그 바람에 아들의 연애관, 결혼관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준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아들의 말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연애와 사랑을 하기 위해 먼저 부유해져야 한다는 시각이 건강해 보이지 않았고, 돈이 많으면 여자가 자동으로 따라올 거라는 생각은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흙수저는 아니더라도 플라스틱 수저나 동수저쯤으로 태어나 30대에 100억대 자산가가 되고, 그 뒤에 연애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라 여겨졌다.

물려준 것 없는 부모이고 보니 실패에 눈물 흘리고 좌절할까 염려되었다. 그래도 어떡하나. 무엇을 느끼든 그 아이의 삶이고, 그 애는 내가 개입할 여지 없이 거리두기를 확실히 했다.




제 일터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가 동료 여선생과 사귀고, 가까운 친구들이 몇 번의 연애를 하는 동안 아들은 컴퓨터 앞에만 있었다.

오피스텔을 마음대로 어질러놓고 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공부하고 싶을 때 하고 홈트레이닝하면서 혼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예찬했다.

제 아버지와 헤어진 상실감으로 허우적대는 내게 '혼자라서 좋은 점'을 설파했다.

하지만 혼자로서 만족스러웠다던 그 아이에게도 구 년은 외로움이 파고들 만한 시간이었을까.

이제는 누군가를 좋아해서 양보하고 배려하며 함께하는 시간의 기쁨을 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아들이 맛난 요리를 차려놓은 사람처럼 말한다.

"엄마도 새로운 사랑을 해 봐."

아무튼...

너희들의 사랑을 응원하마.

팔십대 아버지가 들떴다고 했지만 실은 내가 더했다.

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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