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통스러운 편지

두 번째 전학을 앞두고

by 창창한 날들




안녕?

내가 이 학교에 전학 왔던 1학년 때는 당연히 이곳에서 6학년까지 다니고 졸업하게 될 줄 알았어.

그런데 5학년도 마치지 못하고 가는구나.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정말 아쉽다.

1학년에 전학 왔을 때 영규가 나한테 잘해 줬던 것 기억나.

말하지는 않았지만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때 나보다 더 장난꾸러기였던 영규가 급식실도 알려주고, 화장실도 알려주어서 나는 덜 헤맸어.

내가 편의점에서 막대 사탕 훔칠 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 줘서 고마웠고.

영규야, 나 그다음부터는 하지 않았어. 정말이야. 믿어줘.

김민주는 지난 한 달 동안 나랑 짝꿍 하면서 내가 장난을 많이 쳤는데 잘 참아줘서 고마웠다.

누나처럼 행동해서 잘난 체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네가 마음이 넓다고 느낀 적도 있었어.

선생님, 1학기 내내 말 많고 질문 많은 내게 귀를 열어 주셔서 나의 1년이 복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니 정확히는 한 학기네요.

1학년 때는 너무 어려서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게 뭔지 몰랐던 것 같아요.


너희들과 선생님은 남아 있는데 나만 떠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

이런 상황이 내 잘못으로 일어난 것도 아닌데 내가 대단히 잘못한 것만 같다.

엄청 미안한 마음이야.

그래도 이해해 주겠니?

언젠가는 사회에서 만나게 되면, 내가 사람 기억을 잘 못해서 너희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기대는 하지 말고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주겠니?

**초 5학년 같은 반 누구였다고 하면 내가 반가워할게.

새 학교에 가서 너희들 같은 친구들을 만날지, 선생님처럼 친절한 분을 만날지 정말 두근거리고 걱정이 되지만, 부모님이 이사를 해 버리니 따라가지 않을 수는 없고...

나 잘 지내볼게.

너희들도 6학년 잘 올라가라.

나는 이 편지를 너희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테야.

이 편지를 준다 한들 너희에게 답장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고, 너희를 다시 만날 가능성도 없다는 걸 알거든.

지금 편지를 쓰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일지 몰라.

하지만 이렇게 쓰면서 나 나름대로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어.

어젯밤 자기 전에 조금 울었어.

엄마, 아빠는 내가 전학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고 믿는 것 같아.

그게 더 짜증 나.

전학 온 친구가 어울리지 못한 채 왕따를 당하는 것도 나는 봤거든.

이게 아이한테는 얼마나 엄청난 일인데...

- 새 학교로 가기 전의 한**가




위 글은 열두 살 때의 아들을 화자로 하여 써 본 글이다.
격주로 온라인 글 쓰기를 하느라 ZOOM을 여는 순간 아들로부터 저녁을 먹자고 전화가 왔다. 아들도 보고 싶고, 글 쓰기도 하고 싶어 오라고 허락했다.

그날의 글감은 <가장 고통스러운 편지>였다.

아들에게 물었다.

"네가 가장 고통스러운 편지를 쓴다면 무엇에 관한 일일 것 같아?"

실은 아들의 성격을 미루어 보건대 그런 일은 었어, 하고 말하리라 예상했다.

"그다지 없긴 한데 굳이 말하자면 전학..."

친구에게 집착하는 스타일도 아닌 데다 학교를 옮겨도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 준 아이라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생명력 넘치는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적잖이 당황했고, 순간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아들은 오히려 엄마의 반응이 의외라는 듯, 서운한 듯 말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게다가 그때 엄마랑 아빠는 나를 볼 여유가 있기나 했어?"

"네가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

"내가 힘들다고 하면 이사 안 갈 거는 아니었잖아. 두 번째 전학을 앞둔 초 5 때 우리 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면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 학창 시절 중 그 반에서 제일 재미있게 보낸 것 같아. 단 육 개월이었지만."

미련 곰탱이 에미는 아들이 너무 담담하게 잘 자라주어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 아빠는 강하게 클 거라고 걱정하지 말자고까지 했다.

성장하면서 아들은 관계에 시니컬한 태도를 보였다.

아들의 성향이 잦은 이사와 전학 때문일 거란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크게 걱정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가운 피, 차가운 유전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들이 때로 차갑다 느낄 때면 핏줄 탓을 한 거다.

아들이 밥을 먹는 동안 아들에게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아들을 화자로 써 보았다.

다 쓴 다음 글동무들에게 읽어 주기 전 아들에게 감수를 받았다.

"어, 거의 비슷해. 이야기만 듣고도 잘 썼네."

아들은 초등학교를 모두 네 군데 다녔다.


한*아~~

가끔 너는 말한다.

"엄마는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이 년 전만 해도 항변했지만, 지금은 인정한다.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웃더구나.

그래, 엄마는 너를 모른다. 너의 아픔을, 너의 환희를, 너의 고민을.

다만,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툭 터뜨리지 말고, 조금만 앞당겨 들려주지 않을래?

너의 힘듦을, 너의 분노를, 너의 눈물을.

십 수년이 지난 후에야 너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구나.

그 시간을 홀로 견뎌왔을 너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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