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한 리뷰 - 단편 <좋은 사람은 드물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선>> (현대문학. 2014.)중에서

by 창창한 날들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은 자유지만



플래너리 오코너를 알게 된 것은 축복이었다.

장서가이자 애독자인 친구 '로기' 덕분에.

그때 나는 소설 습작을 막 시작한 때였는데, 좋은 소설을 골라 읽을 만한 안목이 없었다.


달마다 로기가 권해 준 소설을 읽고 세 친구가 모여 토론했다. 그 책들과 작가들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선물이다. 만남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했던.

레이먼드 카버, 폴 오스터, 존 윌리엄스, 이언 매큐언, 윌리엄 포크너, 플래너리 오코너...


그중 플래너리 오코너에게 받은 충격이 가장 컸다.

잔혹하고 비정하고 무자비한 소설을 쓴 작가가 여성이라는 충격이었다. 성차별적인 생각이랄 수도 있겠으나, 십여 년 전 내 인식 수준이 그랬다.

오코너의 세계는 어설픈 공감과 위로로 포장하는 나의 소설이 흉내 낼 수 없는 먼 어딘가였다.


어떤 삶을 살았으면 작가가 이런 글을 썼을까.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으로 버틴 그녀의 길지 않은 생(生)과 연관 지으면 설명이 될까. 1920년대 보수적인 미국 남부의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배경으로 설명이 될까.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고집이 세서 자기 식대로 살려고 한다. 그러다가 느닷없는 폭력에 노출되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좋은 사람은 참 드물어요." p.170



주인공 가족이 들렀던 카페의 사장이 한 말이다. 자기만큼은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자가 '나 빼고 다른 이들은 참 이 정도밖에 안 되네요. 개탄스러워요.'라며 좋은 사람이 사라지는 세상을 걱정하는 투로.


"어떤 사람은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서도 평생을 살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 이유를 물어야 해. 그리고 이 아이는 후자야." p.178



탈옥범이 주인공 가족 중 할머니에게 자기 아버지가 했다며 들려준 말이다.

'인생에 대해 이유를 물어야 하는 사람'이란 태어날 가치도 없는 인간이란 뜻 같은데, 아들을 두고 그런 말을 농담처럼 한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아들은 자신은 물론 그 누구도 존엄한 인간은 없다고 믿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이 소설의 맥락과 상관없이 '인간은 대체 왜 살아야 할까' 하며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우울감에 빠는 나한테 꽂힌 문장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악인(惡人)이나 범인(凡人)이나 할 것 없이 위 문장 따위의 농담을 자주 해서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나는 이해하기 쉽지 않는 작품이지만,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년)'와 비슷한 분위기라 느낄 수 있으며, 탁월한 물 묘사와 긴장감 높은 전개로 후루룩 읽게 되는 작품이다.


오코너의 작품은 독자의 내면에 교묘히 숨겨둔 허위와 위선이 의식돼 콕콕 쑤시다가 어느새 까발려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어느 시인이 '거 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라고 한 시구가 생각나는.




* 플래너리 오코너

스물다섯 살에 루푸스병으로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임을 알았지만 이후 12년을 끈질기게 살아 내어 장편소설 두 편과 단편소설 서른두 편만으로 문학사에 깊은 자취를 남겼다. 고향에서 은둔하며 걷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 같은 확고한 작가 정신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20세기 미국 소설의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오코너의 구원은 무자비한 폭력이나 돌연한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압도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녀가 만들어 낸 그로테스크한 비극의 세계는 지난 몇십 년 동안 놀라운 만큼 무수한 평론을 낳았고 대중적으로도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녀 생존 시와 사후에 걸쳐 세 차례의 오헨리상을 수상,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상과 『단편소설전집』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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