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솔직할 수가

리뷰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01. 6.)

by 창창한 날들


이런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이런 글쓰기를 세계가 인정한다고?

그녀는 무려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빈민가에, 신정(神政) 국가에, 혹은 옆 건물에 사는 여성들의 착취가 모두 끝날 때까지 자신이 투쟁할 것임을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투쟁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말>(아니 에르노/로즈마리 라그라브 저. 윤진 역. 마음산책) 62쪽


202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 글쓰기'를 표방해 온 작가이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그 중간의 어디에 그녀의 글이 있다.

<단순한 열정>에서 작가는 '나'의 심리상태를 제삼자처럼 서술했다. 명망 있는 대학교수가 하루 종일 한 남자만 생각하며 지낸다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써서 출간했다? 게다가 상대는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이다.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단순한 열정> 20쪽


그 사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이전에 즐기던 독서나 외출 따위의 모든 활동을 자제했다. 나는 완벽한 한가로움을 갈망했다. 나는 상사가 요구하는 시간 외 근무를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히 거절했다. 내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상상의 이야기에 자유롭게 전념하지 못하도록 나를 방해하는 것들에 맞설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단순한 열정> 35쪽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부분에서 읽기를 멈추었다.

내가 마흔 이후에 몇 년 동안 명상을 해 온 이유는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자유로운 나로 거듭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니 에르노는 오히려 열정에 달뜨는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방해되는 주변 조건을 제거했다니, 다른 접근을 한 그녀가 놀랍고 대단했다. 그녀는 육십 살이 넘어서 가장 열정적인 사랑을 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단순한 열정> 67쪽


국어사전에 사치는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것'이라 나온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에게 사치란 물질적인 욕망에서, 지적인 욕망으로 변했으며, 지금은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일이라 말한다.

사치라 표현했으니 분수에 지나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욕망하는 자신을 그대로 둘 것이라는 뜻이겠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행복 그 자체를 선택하는 그녀의 방식.


아니 에르노의 다른 책들은 어떨까.

<아니 에르노의 말>을 읽어보니 <단순한 열정>이 나오게 된 배경이 이해되었다.

그녀의 글쓰기 자세가 내 머리에 도끼질을 하였다. 무엇보다 '나'를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서.

그 이야기는 다음에 정리해 보려 한다. 내겐 너무 거대한 주제라서 3월 안에 정리할 수 있을까 싶지만.




* 아니 에르노

194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2000년까지 대학교수로 재직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이다.

<단순한 열정>은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분석한 소설이다.

<빈 옷장>으로 등단했고 <부끄러움>, <집착>, <칼 같은 글쓰기> 등을 발표했다. - 문학동네 소개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