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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r 11. 2024

혈육이라 해서 잘 지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리뷰 <지나가는 밤>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문학동네)




단편 <지나가는 밤>은 두 자매의 이야기다.

윤희와 주희는 각자의 상처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는 몇 년 동안 남남보다 못하게 지내다 하룻밤을 함께 자게 된다.

과연 그날 밤은 자매에게 재회와 화해의 밤이 될까.


혼자를 견디지 못하고 사람을 찾게 될 때가 있잖아. 그게 잘못은 아니지. 외롭다는 게 죄는 아니지. (94쪽)


예전의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사람들과 외로움에 대해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감정 불구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첫사랑인 남편과 헤어지고 나자 구체적으로 '혼자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알아차리게 되었는데, 그래선지 혈육 이야기와 상관 없이 이 문장에 절절하게 공감하였다.

인생에서 첫 이별을 겪은, 현재의 나를 해명해 주는 같아 몹시 반가웠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99쪽)


적어도 '어른이 된 이후의 삶'에선 남자친구이자 남편이 될 그가 내 곁에 늘 있었으므로, 이 문장에 공감이 되진 않았다. 우리는 서른 해 동안 동반자이자 서로에게 절대적 존재로 살았기  때문이다.

헤어짐 이후에야 이 문장이 무언지 알 것 같으니, 우리의 이별은 나를 성장케 한 것이 틀림없다. 슬프게도.


그런데도, 가끔은 사람들이 우리 엄마 죽지 말라고 빌어준 거, 그 기도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 기도들은 기도 나름대로 계속 자기 길을 가는 거지. 그것도 아니라면… (100쪽)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 (101쪽)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없는 일은 아니었다.

상정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도 분명히 일어난 일이었다면 그 시간, 혹은 기도나 소망 따위들은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절절한 기도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작가는 믿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지나가는 밤'이란 제목은 묘하다. 밤을 의인화하여 안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듯한 인상을 줌과 동시에 인간의 경험이나 기억과는 별개로 밤이 나름의 길을 가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십 년도 더 지난 잠이 오지 않는 밤, 만이천 킬로미터 떨어진 땅의 한구석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그때, 고작 열여덟이었던 주희의 외로움을 그렇게 외면한 자신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 채로. (102쪽)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윤희에게 중얼거렸다.

'그렇담 윤희야, 주희에게 동감의 말 좀, 위로의 말 좀, 응원의 말 좀 해 주지 그랬어. 이제라도. 윤희야.'


하지만 무의식적인 나의 바람은 혈육이니 쫌 화해하고 가까이 지내 봐, 라는 뜻이 아니었다.

'관계'의 회복에 관한 응원이었다.

상대가 내 곁에 없어도 그것이 더 편안하다면 상관없을 터이지만, 그 상태가 자신에게 고통일 뿐이라면 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나은 선택이 아닐까.


쌀쌀한 밤, 이불이라도 덮어줄 사람으로 주희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윤희의 마음에 작은 빛을 드리웠다. (102쪽)


둘의 관계가 이전과는 또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문장인 듯하여, 조금 안도한다.

'여느 자매처럼 다정하게' 지내지 않더라도, 서로의 존재 자체가 상처가 아닌 위안이 되는 날들이 그들에게 당도하기를 바라며.







* 최은영 작가


페미니즘, 이민,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주요 작품으로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애쓰지 않아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있다.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그들을 사유하는 깊은 통찰력과 씁쓸함을 자아내는 고유한 작품의 정서는《쇼코의 미소》를 시작으로 작자의 작품을 그리는 기준점이 되었다. 두 번째 소설집《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훌륭하고 세련된 문체와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허균 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 소설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대산 문학상, 제5회, 제8회, 제11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예스 24시'작가 소개서 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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