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카페에 밤늦게까지 앉아 있고 싶어 하는 쪽이야.
잠들고 싶지 않은 그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이고, 밤에 불을 켜 두어야 하는 그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 (중략)
매일 밤 나는 카페 문을 닫는 게 망설여져. 혹시 이곳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봐. (중략)
이해 못 하는군.
여기는 깨끗하고 쾌적한 카페야.
또 불이 환하지.
빛이 아주 좋고, 게다가, 이제는 나뭇잎 그림자도 있어. 131쪽
그는 뭘 두려워하는 걸까? 두려움이나 걱정은 아니었다.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허무였다. 모든 게 허무였고, 사람 또한 허무였다. 다만 그것뿐이었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빛, 그리고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허무 안에 살면서도 결코 그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는 그 모두가 나다(허무) 임을 알았다. 131~132쪽
헤밍웨이에게 말이 완전히 사라지고 행동만 남는다기보다는, 있어야 할 것 같은 말이 아예 생략되거나 대명사로 대체되고 기존의 언어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것들로 진입하는 우회로 역할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뜻밖에도 헤밍웨이의 소설, 특히 단편들은 분명하기는커녕 모호하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옮긴이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