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의 삶> (4) 외국어
JLPT 시험을 등록했다. 취미로 하는 일본어 공부이지만 뭔가 목표점이 생기면 시간도 분량도 맞춰가면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 12월 초에 시험인데 아직도 왕초보 기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 합격하지 않아도 사실은 괜찮다. 다음에 다시 하면 된다. 그래도 내가 시험을 보기 위해서 준비했던 내용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많이 있을 테니까.
하나씩 알아가는 게 기쁘다. 어린 아이가 되어 말을 새롭게 배우는 것 같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 한자 하나를 외우고 나면 그게 들리고 보이고 알아차려진다. 아무 말도 아닌 소음이나 다름없었던 말이 비로소 말로 들리는 것이다.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 전에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고 가보고 싶었다. 일본어를 처음 배우게 된 것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직장 동료와 함께 항공권 특가 프로모션을 구경하다보니 일본행 직항 티켓이 있었고, 티켓을 끊고 이야기 하다 보니 둘 다 일본어 공부에 관심이 있었고, 그러다가 근처에서 무려 3만원 가격에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마침 그 날이 신청 기간이어서 바로 수업 신청까지 바로 이어갔다.
일주일에 두 번 오전 열 시에 일본어를 배우러, 오하요고자이마스, 도조요로시꾸오네가이시마스 같은 말부터 시작하면서 다녔다. 선생님의 말을 여러번 따라하고, 외워야 한다는 강박이나 부담이 없이 아무 것도 모르는 외국어를 조금씩 익혀갔다. 한 번 수업을 듣고 나면 단어 하나, 표현 하나 정도씩을 알게 되었다.
평일 오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거의 다 중년 분들이었다. 많이 살았건 적게 살았건 직장에 다니건 아니건 무슨 일을 하던 애가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모두 외국어 앞에서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랭이. 거기에 온 사람들은 자신이 무지랭이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들 수록 자신의 부족함이나 모자람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나의 지난 날을 부정하는 것과도 맞닿아있기 때문일까. 살아온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쌓아왔음을 긍정해야 나의 과거와 현재를 긍정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더 많이 읽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크리스티앙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 중에서)"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한 세계를 완전히 모르고 살 때는 그 세계가 있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세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지한다. 새로운 세계를 조금씩 배워가다 보면 그만큼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 여행을 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 기분, 내가 작아지고 내가 엿보는 세계가 더 넓어지는 이 기분을 느낄 때 나는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일본어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거의 반년 내내 같은 노래를 매일 듣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들을 때마다 여전히 단어나 표현이 하나씩 더 많이 귀에 꽂힌다. 무심코 한 단어가 귀에 꽂힐 때마다 어찌나 반가운지.
내가 모르는 것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가슴을 뛰게 한다. 긴장보다는 설렘과 흥분에 가까운 느낌이다. 내가 아직 발끝만 닿아본 이 세계에 온몸을 담그고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고 그곳을 탐사하는 설렘과 두근거림. 배움은 대체로 더 나은 쪽으로 나를 이끈다. 몰랐던 세계를 조금씩 알게 되면 또 새로운 것을 꿈꾸게 된다.
내가 뭔가 많이 아는 듯이 말하고 산다. 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세상은 넓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익히는 가장 큰 기쁨은 이것을 깨닫는 것 아닐까. 세상은 넓고, 그만큼의 언어가 있다.
키린지 - エイリアンズ (에일리언즈)
https://youtu.be/JNEtlSSKQIs?feature=shared
나카시마 미카 -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내가 죽으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https://youtu.be/C6st9z_iaao?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