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의 삶> (5) 요리
집,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서 살게 되는 순간부터 가장 중요하고도 지긋지긋하게 마주하게 되는 문제는 먹는 문제다. 대체 집에선 어떻게 그리 매일 먹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일까.
오늘도 떡볶이와 햄버거를 시켜먹었고, 또 거의 매일 밖에서 밥을 사먹고, 부대끼는 속으로 잠드는 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또 후회하지만 외식에 이미 중독되어버린 입이 원하는 바깥 음식의 맛을 외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리에 재미를 붙이지 않고서는 병에 걸리거나 빨리 죽을 것 같다. 일하던 곳에서는 한 두 달에 한 번 씩 요리 클래스를 진행했다. 제주음식연구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클래스에서는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재료로 한식은 물론 양식, 일식, 심지어는 동남아식까지 만들어내곤 했다.
나는 그 클래스의 운영을 담당하면서 어깨 너머로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요리법을 배울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선생님이 남은 재료와 음식 등등을 바리바리 싸주셨고, 그것을 가져와 집에서 차근차근 요리를 따라해보았다. 그것이 요리에 재미를 붙이게 된 결정적 계기였지 않나.
요리라 하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과정이나 재료가 번거로울 것 같고, 또 그렇게 들인 수고에 비해 먹는 것은 순식간이며, 다 먹고 난 후에 한가득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거리를 보면, 이럴 바에 그냥 한 끼 사먹는 게 낫지 않나 싶은 현타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도 뭐든 하면 실력이 느는 법. 요리연구가 L선생님의 클래스와 함께 유튜브에는 나의 수많은 요리 선생님들이 있다. 그때그때 흥미가 가는 메뉴들을 따라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비슷한 과정과 재료에 약간의 변주를 주는 것뿐이라는 것도 발견할 정도로 이제 나는 스스로를 요리 중수 정도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맛있는 음식의 기본 조건은 신선한 재료에서 출발한다. 신선한 재료는 생산지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소비될 때 가능하다. 제주에 와서는 대형 마트보다 자주 가는 마트가 있다. 바로 하나로마트와 한살림이다. 하나로마트와 한살림에는 로컬 푸드 코너가 있고, 그곳을 구경하는 것이 장보기에서 제일 신나는 순간이다. 어떤 음식을 할 지 정하기보다 우선 신선한 재료를 먼저 고르고, 그에 맞춰 메뉴를 생각하는 살짝 더 상급 레벨의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자신감이 최대치로 차올랐던 것은 같이 사는 애인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였다. 팬데믹이 끝나고도 한참 뒤에 그는 코로나에 걸렸고, 같이 사는 나는 걸리지 않아서, 피치 못하게 외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애인은 일주일 간 자체적으로 격리를 했다. 장을 보는 것부터 음식을 만들고 정리하는 것까지, 온전하게 내 몫이 되었다.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이제 당신이 먹는 것은 모두 내 손에 달렸다.
외식을 하지 않고 삼시세끼를 만들어 먹으니 일상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활력이 도는 느낌이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일. 내가 먹을 것을 직접 해결하게 되니,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뒤따른다. 그리고 다 먹은 그릇과 조리 도구를 설거지한다. 내가 벌인 일을 스스로 마무리짓는 결자해지의 미덕은 바로 요리와 설거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있는 것이었다.
애호에는 몰입이 있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오직 결과물이 맛있게 나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열중한다. 재료의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식감에 조화로울지, 맛을 더할 무언가를 더 넣을 수 있을지, 또 어떤 다른 음식이나 음료와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을지를 상상한다.
가끔 레시피를 정확히 따르지 않고 손맛으로 만들어내는 요리가 맛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마치 지휘자같다. 빠른 손놀림과 주저없는 재료의 투입의 움직임. 더 고수가 되어, 레시피가 없어도 창조 요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맛있는 걸 자주 먹자. 그리고 자주 요리를 해먹자. 남은 재료를 가지고 어떤 메뉴를 만들어 볼까. 평소 생각지 않았던 범위로 생각이 뻗어나가고 재료가 조합된다.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을 때 좀더 새로운 방식의 조합을 찾게 된다. 요리를 하며 내가 창의적이 되는 조건, 더 집중하게 되는 환경을 알아간다.
- 우리 지역에서 나는 건강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