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의 삶> (7) 영화 혹은 영화관
영화 산업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OTT 같은 데에서 콘텐츠 소비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문제는 영화 그자체가 아니고 영화관이다. 요즘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자꾸 안가게 되는데, 한물간 옛 건물에 낡은 채로 남아있는 영화관, 가격은 비싸고, 사람은 키오스크로 대체되고, 활력은 없고, 기계와 옛 공간만 남은 곳에서 오래 머무는 경험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영화관에 간 경험은 초6때였다. 가족과 함께 <슈렉>을 보았다. 앞에서 두번째 줄 쯤에 앉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에게는 그날의 추억이 화려하게 남아있다. 시화에서 인천까지 온가족이 아빠 차를 타고 30분을 달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인천 CGV에 갔던 낮과 밤들. 주말이면 낮에 다같이 가서 외식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엔 밤늦게 심야 영화를 보기도 했다. 폐장한 쇼핑몰 가장 높은 층에 있던 극장으로 가는 기분은 비일상의 기분을 내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인천 CGV는 오랫동안 어른이 되는 기분을 주는 공간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시외버스를 타고 혼자 영화를 보러 인천에 다녀오는 것이 나만의 문화활동이었고, 종종 친한 친구 한 두명을 데리고 같이 가기도 하고.
그렇게 화려하던 인천 CGV는 몇년이 지난 후 다시 찾았을 때, 이렇게나 초라했나 싶을 정도로 작아져있었다. 공간은 그대로이지만, 그사이 근처에는 롯데시네마와 또 다른 CGV도 생겼고, 쇼핑몰도 이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옛 상가가 되어버렸다.
그곳 가장 높은 층에 그대로 남아있는 영화관에서는 새로 나오는 영화들을 틀어준다. 젊은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고 팝콘을 팔고, 티켓을 확인하던 활력은 온데간데 없이, 키오스크 몇대가 표를 뽑아주고, 팝콘을 파는 한두명의 남은 사람들도 무기력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던 그때 그 영화관은 이제 낡은 게 된지 오래다. 우리 가족은 네 명이 모인지 10년도 훌쩍 넘어버렸고, 앞으로도 네 명이 함께 영화를 보러갈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관으로 가는 횟수도 뜸해지고 영화를 보는 것도 뜸해졌지만, 종종 영화관을 찾는 재미를 다시 일깨워준건 한림작은영화관이다.
겨우 두 개의 상영관, 게다가 한 상영관에는 겨우 두줄, 네줄의 객석. 정말 ’작은‘ 영화관이다. 영화관이 이렇게 작을 수도 있구나. 집에서 한시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 주말 낮에 들러보니 남녀노소가 모두 영화를 보러 모였다.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아이들, 내게 <슈렉>의 추억이 있듯 그들에게도 작은 영화관의 추억이 스며들겠지.
한림작은영화관에서 재미있게 본 영화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매주 상영시간표를 체크한다. 시간에 맞는 괜찮아보이는 영화가 있으면 한시간 차를 몰고 나간다.
광주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은 공간은 ‘광주극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업중인 가장 오래된 극장이자 단관극장. 상영관이 하나뿐이라 영화를 고르고 시간을 고르는 것이 아닌, 시간에 맞춰 상영되는 영화를 봐야 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고르게 된 영화는 <어파이어>라는 독일영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제가 <in my mind>가 흘러나온다.
내게 광주극장은 이런 장면으로 남았다. 수십년은 된듯한 색이 바래고 먼지쌓인 붉은 객석, 2층까지 마련된 수많은 좌석, 그러나 관객은 겨우 네 명. 정면에는 무대가 있다. 영화도 상영하고 공연도 했을 것이다. 무대 뒤 벽으로 스크린이 있고, 영화가 흐른다. 무대 양 옆으로 붙어있는 스피커에서는 몽환적인 ‘in my mind‘ 노래 가사가 들린다. 주인공 둘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는 여행중이다.
인생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극장을 만들고 싶은 것 같다. 내가 죽고나서도 오래도록 남아있을 극장. 그곳에 오는 사람들이 좋은 추억을 하나씩 새겨갈 수 있는 공간. 그냥 살지 않도록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곳. 영화를 틀 수도 있고 연극을 할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나는 영화인을 꿈꾸었다. 용기가 없어 영화인은 되지 못했다. 관객으로서도 영화와 멀리 지낸지 오래다. 영화를 좋아한 만큼 나는 영화관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인천 CGV에 가서 영화보는 걸 좋아한 만큼, 모두가 잠든 집 거실에서 비디오로 보던 영화의 추억도 그 못지않게 좋았기 때문일까. 작은 극장, 오래된 극장 덕분에 나는 극장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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