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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교 Oct 26. 2024

나를 깨우는 커피

<애호가의 삶> (8) 커피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관계와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 아닐까.


오감에 둔하던 내가 맛에 있어서 조금씩 세심해지고 여러 맛을 느껴보려고 하고 또 나의 맛 취향을 찾게끔 처음 알려준 것은 커피였다.

커피란 본디 쓴 맛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쓴 카페인 물을 들이마시기만 하던 내가 커피에도 여러 맛이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이름도 화려한 ‘콜롬비아 엘 파라이소 리치’. 에스프레소가 아닌 브루잉 커피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접하게 된 커피였다. 알고 지내던 커피 로스터 분이 내가 매번 단조로운 커피만 마시고 찾는 것이 답답했는지(?) 이 커피를 맛보여주었다. 이름에 ‘리치’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처럼, 커피에서는 리치의 과일맛이 났다. 이것이 커피라니? 마치 리치 주스를 마시는 것 같은 화려한 감각이 커피잔에서 폭발했다. 그런 후에는 더 많은 커피 종류를 맛보고 싶었고, 한 잔의 커피에서 다양한 맛과 향을 발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대체로 새로운 것을 접할 때 편견없이 대하고자 다짐하는데, 그것은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견과류 뉘앙스에 복합적인 과일향, 자스민의 향미가 담겨있다…등의 표현을 보면 커피가 그냥 커피지 무슨 저 정도로 과하게 말하지? 싶은 태도를 취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하고 나니 그것이 허세나 과시를 위한 표현만은 아니었다.


좋은 원두도 맛보고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마셔보면서 내가 더 선호하는 스타일의 커피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주 초반에는 고소하고 무난한 커피를 좋아했다면, 리치 커피를 맛본 후에는 과일 향미를 극대화한 커피들을 좋아했다. 요즘엔 매일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산미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커피가 좋다. 또 맑은 날, 흐린 날에 마시고 싶은 커피가 다르고 기분에 따라서도 다른 커피 맛을 선택하는 것이 일상의 작은 변주, 놀이이다. 매일 놓치지 말아야 할 나만의 작은 의식같은 것.


커피의 복합적인 맛을 찾아보면서 마시기 시작한 후로, 음식의 맛을 좀더 예민하게 느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자극만 쫓는 것이 아니라 한 음식 안에 섬세하게 들어있는 맛의 요소들을 찾아본다. 뭉뚱그려서 받아들이던 것들을 세심하게 나눠본다. 그렇게 '맛있는 것'에 대한 기준도 세워보고, 내가 더 맛있게 느끼는 것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내게 맞는 행복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한편 나는 어릴 때부터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어왔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 숙제로 제출했던 시에는 ‘카페 안의 따뜻함’이라는 구절을 쓰기도 했고, 스무 살에는 구인 공고도 없는 카페에 무턱대고 들어가 이력서를 내고 오기도 했다. 이십 대에 가장 많이, 오래 했던 일 역시 카페 바리스타였고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언제고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는 카페의 도시적인 이미지에 매료되었다면, 지금은 커피 한 잔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써의 카페를 좋아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에도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카페 뿐이다.


카페는 모두에게 그렇듯 이제는 단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제3의 공간(집, 회사가 아닌)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 제3공간에서는 새로운 자극, 영감, 발견을 기대한다. 특히 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개인 카페에서는 구석구석 애정이 담긴 소품, 세심하게 골랐을 플레이리스트나 컵과 그릇 같은 것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카페를 통해 새로 만나게 된 것들이 내 일상에 조금씩 색을 더하기도 한다.




오래된 사무실 건물을 자신의 취향으로 탈바꿈한 카페를 들른 적이 있다. 반가운 복고풍의 철제 가구와 소품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그날 나에게 팍! 꽂힌 것은 클래식 라디오였다. 배경 음악으로 클래식 라디오 채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디제이의 간단한 음악 소개가 간간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클래식에 전혀 조예가 없는 나로서도,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는 음악이 듣기가 좋았다. 사장님께 채널을 여쭤보고 그날부터 집에서 종종 클래식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그 후로 종종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나 이른 오전에 클래식을 틀어두곤 한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는 또 어떤 문법과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의 매일의 일상에는 전혀 만날 수 없었던 것을 제3의 공간이 만나게 해 준 것이다.


커피와 카페는 쉼과 일을 느슨하게 붙여준다. 일거리를 들고 카페에 가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커피를 옆에 두기도 한다. 압박에 시달릴 때에 커피 한 잔을 머금으면서 잠시나마 감각을 깨워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커피 맛을 느낀다. 공간에 머물며 달라지는 사람과 에너지를 느낀다. 오감을 의식적으로 열어내기. 그럼으로써 자꾸 흐려지는 내 존재를 일깨워내기. 커피가 나를 깨운다.



PLACE

- 다양한 원두를 맛보는 재미

- 공간에 담긴 개성과 취향을 엿보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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