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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준쌤 May 31. 2024

어두움을 품은 밝음

어렸을 때 EBS에서 "참 쉽죠?"라 말하며 그림을 그리는 밥 아저씨를 기억한다. 오랜만에 인스타에서 그분에 대한 영상과 사진을 보았다. 그 영상은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진행한 방송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지 출처 : 모두의 공원 itzy님 글

밥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Gotta have opposites. Dark and light, light and dark continually in a painting. If you have light on light, you have nothing. If you have dark on dark, you basically have nothing. There we are. You know it's like in life. You've gotta have a little sadness once in a while so you know when the good times comin. I'm waitin on the good times now."


"어둠을 그리려면 빛을 그려야 하지요. 빛을 그리려면 어둠을 그려야 하고요. 어둠과 빛, 빛과 어둠이 그림 속에서 반복됩니다. 빛 안에서 빛을 그리면 아무것도 없지요. 어둠 속에서 어둠을 그려도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꼭 인생 같지요. 슬플 때가 있어야 즐거울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좋은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 찬 20대에는 글로서만 와닿았다면 30대가 된 지금에는 삶으로서 와닿는다. 인생과 삶 속에서 기쁘고 좋은 일들만 일어날 수는 없다. 어두운 시기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 시기들을 거치고 나니 이제는 조금은 알게 됐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어두움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영원히 지속되지 않다는 것을. 그 어두움을 품은 밝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여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에서 발견한 문장에서도 이와 같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많은 시작의 순간에 있었다면

그것들이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헤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상실이 크다고 생각된다면

삶에서 그만큼 많은 것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많은 실수를 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 것보다 좋은 것이다.

별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상실과 다가오는 어두움을 피할 수는 없다. 그것 역시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다. 그 여정에서 어둠과 빛은 동시에 있다. 즐거움과 슬픔이 함께 존재한다. 이 진실을 비껴나가지 않고 오롯이 마주할 때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길이 아닐까.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라는 여정과 여행에서 그 길을 걷는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니까.

  

20대에는 어두움은 숨기고 밝음만을 드러내려고 했다. 밝은 척을 하는 건 무진장 힘든 일이었다. 그래야만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지금도 그럴 때가 있지만 이제는 알아차린다. 내가 인정받으려고, 사랑받고 싶어서 내가 가진 좋은 에너지만을 드러내려고 하는구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수용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지만 조금은 어두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나는 '어두움을 품은 밝음'이다. 그것이 나를 이끄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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