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괜찮을 줄 알았다

괜찮은 척했던 서른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셀프치유이야기

by 범준쌤

여전히 찌질했다. 도저히 내가 10대 때 꿈꾸던, 20대 때 선망하던 그런 30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른이 되면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꽤 괜찮은 집에서, 꽤 괜찮은 차를 몰고, 꽤 괜찮은 사람과 만나고 있을 줄 알았다. 서른 때 나는 그 4가지 중 하나도 없었다. 그 당시엔 직장을 그만두고, 4개월 동안 방황하고 있었다. 2년 넘게 만나오던 여자 친구와는 헤어졌었다. 인간관계도 힘이 들었다. 사랑도 우정도 내겐 없는 것만 같았다. 집은커녕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차는 웬 말, 뚜벅이 오브 뚜벅이였고 장롱면허였다.


나는 꿈도 잃고, 현실도 잃어버리고 있었다. 차라리 자신감이 넘치던 20대의 모습이 훨씬 나았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10대가 훨씬 괜찮았다. 서른이면 괜찮을 줄 알았다. 서른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어른은커녕 설익은 어른, 아니 어른인 척하는 아이였다. 물론 서른세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찌질이다. 그나마 조금 덜 찌질해졌을 뿐이다. 서른은 내 인생 가장 찌질했고, 겁쟁이인 시기였다.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가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려 깊은 어둠 속에 갇혀 혼자 전전긍긍하며 지새버린 날도 여러 번이었다.


누군가가 말하는 대인기피증, 우울증, 불안장애가 나였던 거 같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서른인 그 당시(2016.01.31)에는 통장잔고에 88,613원이 있었다.

찌질한 통장.jpg 찌질한 통장


마음이 힘들고, 삶이 힘들어도 전문가를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심리상담과 심리치료는 내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부담이 아니라 불가능이었다. 친구 결혼식에 축의금조차 낼 돈도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도, 돈이 없었다. 다시 일하는 것도 두려웠다.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일들이 그 당시에는 이상하게도 겁이 났다. 잘해왔던 일들조차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의심했던 시기였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이 전혀 없었다. 돈보다도 더 필요했던 건 그것이었는데. 그렇게 나는 나를 더 옥죄어갔다. 망한 인생, 찌질이, 겁쟁이였다. 엄마한테 30만 원씩 용돈을 받고 있는 상황 자체도 미칠 노릇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땐 인정하지 못했지만,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찌질이었다. 직업도 없고, 직장도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못하고, 부모님에게 여전히 용돈을 받는 한심스러운 서른이었다.


근데 더 힘들었던 건, 그 고민과 불안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나를 더 걱정할까 봐 암흑 같은 상황을 말하지 못했다. 가족들 앞에서 다 이야기하고, 펑펑 울고 싶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친구들에게는 마음 터놓고 속 깊은 이야기를 잘 못해봐서, 어색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친구들 앞에서 솔직하게 내 모든 어두움과 좌절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를 무능력하게 보고, 한심스럽게 볼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더 취약해져 버렸다.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면, 극복하지 못했다면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살 만하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진 못해도, 용돈을 받지 않고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경제력을 얻었다. 직업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자신감과 자존감이 생겼다. 나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 속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소중한 이들이 생겼다. 여전히 괜찮지 않을 때가 있지만, 괜찮을 때도 많다.


나는 나를 스스로 치유했다. 책과 음악으로 말이다. 유일한 치유제였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닫혀버린, 꽉 막혀버린 마음에 숨 쉴 틈이 생겼다. 그 틈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이자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올 용기를 얻었고, 지금을, 오늘을 잘 살아가려고 하고 있는 서른세 살이 되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욱더 생생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찌질했던 서른이 조금은 덜 찌질한 서른세 살이 될 수 있었던 찌질한 이야기. 책과 음악으로 나를 치유해나갔던 이야기.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같이 2년 동안 원룸에서 살았던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나에게만 말했던 그 이야기를 이 하얀 여백 속에 조금씩 기록해나가고 채워나가보려 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나와 비슷한 시기의 서른을 보내고 있는 찌질이들을 위해서다. 그리고 여전히 찌질한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응원가이자, 나와 비슷한 서른, 삼십 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응원가이다. 내가 위로받았던 음악과 책 속에서 당신도 위로받았으면 한다. 내가 치유받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도 스스로를 치유해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당신이 위로받았던 이야기, 치유할 수 있었던 내면의 힘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다. 기회가 된다면 전국의 찌질이들을 모아 찌질이 페스티벌을 열어보고 싶다. 이 책이 그 만남의 시작점이자, 구심점이 되었으면 한다.


최승자 시인은 말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이렇게 살 수도 없었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었기에

나는 죽지 않았고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은 덜 찌질한 서른세 살이 되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