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룩거리는 이들에게

절룩거리네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by 범준쌤

나는 절룩거림을 극복한 줄 알았다. 두려움과 불안을 몇 번 극복한 경험들로 인해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열정과 노력이 있다면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이 자신감이 나를 무덤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다는 걸. 그 자신감이 나를 후벼 파는 예리한 칼날로 돌아올 줄은. 금세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절벽 끝에 뿌리내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한 포기의 풀 같은 존재가 사실 나였다. 그 절벽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간신히 땅을 붙잡고 있는 풀 같은.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 괜찮은 척, 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 척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절룩거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거짓말을 했다. 바보 같아 보일까 봐, 무능력해 보일까 봐, 별 볼 일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타인들에게, 때론 스스로에게조차 거짓말을 했다. 자신을 속이, 자신에게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 비밀 같은 진실이 누구에게나 한 가지 이상 있다는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마냥 친절해 보이고 싶었다. 착한 사람이고 싶었다. 잘 지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잘 지내지.(너무 불안해. 우울하고 힘들어)."

"그때 일이 있어서 결혼식을 못 가네. 미안해.(가고 싶은데 축의 할 돈이 없네. 미안해서 못 가겠어...)."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지금 사람을 만나기 너무 힘드니, 다음번에 제가 좀 나아지면 그때 만나요)."


내가 기억나는, 겉으로 드러난 말들과 속에서만 외치고 있는 말들이다. 이 말들 말고도 수많은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타인을 속이고, 나를 속이는 그 교묘한 거짓말들은 타인에게는 그럴싸한 거절로 들렸겠지만 나에게는 더 큰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극복하려 해 보았다.

"어둡고 긴 터널은 언젠가 끝이 난다."

(그 언젠가인지를 모르겠어서 지금 힘들다고.)

"너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존재는 병신이자 찌질이야.)

"시련은 위대함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야."

(뭔 개소리야.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위대함은 개풀, 평범해 보이는 것도 버겁구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고자 하는 걸 이룰 수 있어."

(포기하고 싶어. 해봤자 나는 원하고자 하는 걸 이룰 수 없을 거야.)


책 속의 글자들이 전혀 위로되지 않았고, 그 작가들에게 위안받지 못했다. 반감만 들었다. 그럴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전혀 귀에 안 들어올 때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말이 전혀 공감이 되지 않을 때가. 그들의 말이 듣기 힘든 소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쭙잖은 위로와 사탕발림 같은 칭찬, 어디선가 들어본 그런 말들은 오히려 나를 더 짜증 나게 만들거나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끝나게 만들 뿐이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노래를 들었다. 내 폰에는 많은 음악들이 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모아 온 나의 음악들을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만날 수 있었지만, 너무나도 힘든 나머지 그 음악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아무 노래나 들어보자며 틀었고, 랜덤 재생으로 설정을 해놓았다. 그리고 몇 곡 이후 익숙한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의 한 남자가 자신의 어두움과 초라함을 인정하며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다.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이제 난 그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깨달은 지 오래야 이게 내 팔자라는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허구헌널 사랑타령

나잇값도 못하는 게

골방 속에 쳐 박혀

뚱땅땅 빠바빠빠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도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지루한 옛사랑도

구역질 나는 세상도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 게 절룩거리네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나를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Infield Fly 2번 트랙



노래를 듣다 눈물이 났다. 편의점 도시락 사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봉지라면 하나를 달랑 사들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이 사람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싶었다. 나를 단정 짓지 않고, 어쭙잖게 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찌질함과 초라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스스로 마주하고 인정하고 있는 걸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나도 안 힘들어'라는 말이 더 힘겹게 들렸다. 내가 자주 외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가슴 아플 뿐이라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 또 다른 나를 노래에서 만난 것 같았다.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노래가 때로는 영혼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는 걸 이때 알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도 있었구나는 라는 잊고 있었던 생각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이 노래를 듣자마자, 듣고 난 직후 기적같이 정신을 차리고 삶이 달라진 건 아니다. 서서히 나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할까. 누군가가 강제로 나를 끌어올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밑에서 서서히 나를 바쳐주고, 나를 부드럽게 밀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의 밑바닥, 민낯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찌질함을 조금씩 나에게, 타인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나만 찌질한게 아니었고, 찌질함을 고백하니 오히려 덜 찌질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신뢰하는 이들에게 고백하는 그 순간에도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자연스레 이 뮤지션의 다른 노래를 찾아 듣게 되었다. 이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져서 여러 기사와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언제나 응원해주고 힘을 주는 친구 같은 뮤지션이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가끔 만나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하며 수다 떠는 형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그의 음악은 뒤늦게 발견한 일기장과 같다. 나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은 일기장 같은 그의 노래와 가사는 나를 울렸고, 울림을 줬다. 데뷔 8년 차 8장의 앨범 발매, 부지런히 뛰어왔지만, 연봉 1200만 원, 월 수입 100만 원도 힘겹게 벌던 그는 끝까지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지 30여 시간 만에 발견되어 세상을 떠났다. 전혀 위대해 보이지 않는 이 뮤지션에게서, 자조 섞인, 음울한 노랫말에서 위안을 받고 위로를 받는 건 왜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을지언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했고, 철학과 신념을 이야기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룩거리고 있는 이들에게, 음악으로 말을 건네고, 그 이야기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었기에.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세상은 살아갈만하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씨앗을 스스로 품게 된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그와의 추억을 공유해준 이의 이야기 한편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이 글은 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앨범 댓글에 올라와 있다.

"집안 사정이 기울고 하고 싶은 건 또 많은데 나이가 족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못할 때 나이를 속여서 전단지 알바를 겨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가 준 종이를 받지 않는 것보다 바닥에 버려서 밟히는 게 더 마음 아팠다. 이어폰 하나 꼽고 20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며 문에 전단지 하나씩 붙이느라 손에 테이프 자국 나고 살도 늘어지고... 테이프가 부착된 종이를 떼어내느라 엄지 손가락이 며칠 동안 약간 틀어지고 그랬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전단지를 나눠 주고 겨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간만에 이 노랠 듣게 됐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박혔다.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이 부분에서 버스란 사실도 잊고 입을 막아가며 폭풍 오열을 했다. 외동이라서 늘 괜찮아야만 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부모님 속도 문드러질 테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엔 도가 트여 있었다. 괜찮은 척하다 보니 괜찮아야 되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이 댓글을 쓴 그는 이제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지금 어디선가 폭풍 오열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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