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는 나를 세상과 연결하기 위한 필수 조건
어린 시절 달리기를 하면 아주 신났었어요. 달리면 무언가 초 집중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나만 보였어요. 드디어 1등으로 결승선에 들어오면 체육선생님이 낚아챈 내 손목에는 1이란 숫자가 쾅 찍히고 몇 권의 공책도 받을 수 있었어요. 잠들기 전까지 온 가족의 이야기는 달리기 1등을 한 내 얘기로 가득했었죠. 그날 부모님이 많이 웃으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웃으셨던 건 딸이 달리기 1등을 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성취한 딸의 주절거림이 귀엽게 보이셨나 봐요. 늦은 시간까지 잠도 안 자고 혼자 종알 종알 스스로 칭찬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셨겠어요? 하늘을 찌르는 듯한 자신감으로 가득 찬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가 있던 그날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해요.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도 나를 자랑하고 칭찬해도 괜찮았었는데, 왜 그럴까 생가해보니니 그때는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며 기뻐해주는 어른들이 곁에 계셨기 때문이에요.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이젠 거꾸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에요. 그러다 보니 나를 자랑하고 칭찬하며 스스로 대견하다고 안아주는 일은 하고 싶어도 못하고, 해도 불필요하다 느끼고 사는 것 같아요.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늘 같은 입장의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고 일하다 보면 서로의 비슷한 처지를 드러내어 자랑한다는 것 자체가 민폐가 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부러 안 하기도 하고, 하려다가도 잊어버리기도 해요.
대한민국에는 이런 생각으로 30대 40대를 지나는 엄마, 아빠들이 아주 많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든 우리 가족 잘 먹고 잘 살게 하려 불철주야로 애쓰면서 오로지 자식들을 안아주고 칭찬하는 것에 집중하죠. 정작 수고하고 힘든 자신을 스스로 안아주는 것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 마음을 그 누구라도 알아주면 좋으련만, 우리 엄마 아빠들이 하는 일은 숨 쉬는 공기와도 같아서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아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지요.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에 아픔을 느끼게 될 때가 있어요. '가족을 위해 일하고 살면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기쁜지 그리고 무엇으로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지는 지를 알려고 노력한 적도 별로 없는 것을 알게 돼요. 자식에게 하는 말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로만 해주면도 계속 미안한 마음으로 부족하다는 표현만 커질 뿐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을 놓치고 살고 있지 않나요?
결국 자신 스스로를 대견하다 자랑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지난 세월은 그때는 괜찮았아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이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오거나 혹은 혼자 남겨지는 시간이 다가오게 돼요. 그러면 그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얼마 남지 않는 삶 자체 된 후랍니다.
연습이 필요해요. 나를 알아주는 연습! 그리고 나를 안아주는 연습을 해야 해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안아주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 뿐이거든요. 억울한 일이 있어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도 나를 안아주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슬픔이 다가와 슬픔으로 억눌려 있을 때 나를 안아주어야 해요. 그리고 신이 나고 자랑할 일이 있어도 안아주어야 해요. 그 이유는 화나는 이유도, 슬픈 이유도 그리고 자랑하고 픈이유도 모두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이에요.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오늘은 더 나를 사랑해 주어야 정말 잘하는 일로 더 자신 있게 이 험한 세상과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