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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Apr 30. 2019

군대 꿈을 꾸었다

접어둔 걱정을 읽는 것

군대 꿈을 꾸었다.


어스름한 여름 저녁.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나는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부대 복귀에 늦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부대에 도착하니 전쟁에 준하는 어떤 비상 상황이 발령되었다. 꿈이라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상급자로부터 늦게 복귀한 것에 대한 핀잔을 들었지만,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크게 혼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사용했던 개인 비품과 장구류들을 모두 버렸으니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늦게 복귀했다지만 너무 하잖아?’


어찌 됐든 비상 상황이었고 부대는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나는 서둘러 물건을 찾으러 갔다.


도착한 장소는 쓰레기 매립지처럼 넓어서 내 물품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주워서 구색을 갖춰야만 했다.


돌아오는 도중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고, 거대한 홍수의 너울이 부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나는 꿈속에서 뜬금없이 장롱 앞에 서 있었는데, 장롱의 틈마다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틈으로 물이 연거푸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비상 상황이 종료되었고, 나는 나중에 다시 혼자서 장롱의 문을 열어보았다.


장롱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왜 물이 쏟아졌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승전결 없는 꿈다운 마무리다. 예전 같으면 ‘아, 또 군대 꿈꿨네. 기분 나빠’ 하며 심드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꾼 꿈은 요즘의 나에게 어떤 ‘상징’으로 읽혔다.


군대라는 것은 한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직체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다. 내가 꾼 꿈속의 군대는 현실에서의 조직. 그러니까 회사나 친구 그룹 같은 ‘조직’을 상징했다고 생각된다. 나는 현재 그 조직 또는 집단이라는 것으로부터 나와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꿈속에서의 늦은 복귀, 비상 상황, 천재지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몽땅 잃어버리는 경험을 통해서 일종의 소속감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읽을 수 있다.


조금 다른 불안함의 표현이었던 ‘장롱에서 쏟아진 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들었다. 어떤 분노 혹은 답답함을 쏟아낸 눈물일까? 다시 회사에 가서 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속 외침을 덮어두고 있지는 않았나? 혼자만의 휴가를 즐기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나?


사실, 지금의 나와 내 주변의 상황에 불만이 없다. 그와 동시에 현실적으로 이런 삶의 방식을 계속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 꿈이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의 나에게 보내는 내면의 시그널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징이라고 써두었지만 복귀에 ‘늦었다’는 꿈속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라서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꿈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의 나에게는 소속감을 대표하는 ‘군대’라는 상징이 누군가, 혹은 다른 시점의 나에겐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나름의 확실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렇게 적어놓을 수 있었다.



꿈이든 현실이든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신호’들이 있다. 가끔 그것을 하나둘 발견하고 나름의 해석을 해보면서 내가 처한 환경과 마주치기 싫었던 진실을 발견한다.


사실, 이번에 꾼 꿈은 내가 외면한 현실에 대한 ‘접어둔 걱정’이 표현된 것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지금 당장 소속감을 느끼면서 회사에 다니라고 이런 꿈을 꾼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의 요즘은 마음속 불안함을 감추면서, 현실에서는 적극적으로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던지지 못하며 머뭇거리고 있다. 그런 나에게 보내는 '내면의 재촉'인 셈이다. 목표를 다시 확신하며 스스로 잘해 보자는 동기 부여를 해보게 된다. 약간의 위로와 힘도 얻게 된다.


많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평생에 걸쳐 군대 관련 꿈을 꾼다고 한다. 나 역시 군대 꿈을 가끔 꾸기도 했는데, 이번에 꾼 꿈은 시기적으로 해석 가능한 부분이 있었기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내 미래를 확신하면서, ‘나’라는 조직을 끌어가는 오늘이다.



♪ 월간 윤종신 2017년 6월호 ‘끝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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