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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May 07. 2019

어린이날 단톡방에서 발견한 내 모습

30대의 성장이라는 것

어린이날 저녁.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빠들 다 고생 많았다는 내용이었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야기 주제였다. 서로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어린이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싱글 친구들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빠들은 고생했겠구나 한 마디 적어둔 뒤 조용히 있었다.


문득, 나는 친구들과 다르게 좀 더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 방송 일을 시작한 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대학에 다녀왔다.


30대 중반인 친구들은 지금 육아에 빠져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자녀가 주는 기쁨과 피로함이 담긴 일상에 대해 전해 듣는다. 내게는 그런 일들이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가끔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쉽지만(?) 신체에 깃드는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몸은 나이를 먹어 가는데, 보편적으로 혹은 평균적으로 경험하는 어떤 ‘삶의 흐름’ 혹은 ‘순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배움은 늦고 가정을 꾸리는 일도 미뤄지고 있다. 


30대 중반을 지난 내 몸은 20대 후반의 인생을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 틈이 더 벌어질지 좁아질지 알 수가 없다. 예전에는 혼자서 잘 다니던 공연이나 행사장 같은 곳에도 아저씨가 된 몸(?)으로 가는 게 어색해지는 순간이 생기곤 한다. 아무래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야 정확하게 내 현재 모습을 발견한 것이 다행 아닌 다행이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혹은 깨달을 때마다, 그것을 알게 된 기쁨과 함께 나 자신의 부족함(느림)을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아직도 내 무언가는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체 나이와의 괴리감을 들게 한다. 30대 이후의 신체는 성장이 아니라 노화라고 부르기 시작하니까.



나이를 먹고 신체의 변화가 생긴다고 해서 어떤 제약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신체적 변화(노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적 조건(나이에 맞는 대우와 행동)에 대해 익숙해져야 하는 끝없는 성장(외부 변화에 적응)의 연속이다. 유아기, 청소년기에 겪었던 신체적 변화, 외부 세계의 달라지는 대우, 그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과 같다.


그것이 친구들보다 좀 늦는 기분이 들었다고 우울해질 일은 없다. 지금의 나는 결국 내 삶이 내 속도로 굴러간다는 걸 아는 '나이'니까.



BGM♪ 우효 ‘수영’ (앨범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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