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하얀 종이가 한 동안 채워지지 않는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고, 텅 빈 종이 처럼 허전한 마음도 거세지고 있다.
하얀 종이를 손에 쥔 그녀는, 천천히 창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새장에 갇힌 새를 놓아주듯,
새 하얀 종이를 창문 밖으로 보내준다. 자유로이 날아가는 새 처럼, 종이는 바람과 함께 펄럭이며
인사를 한다. 그녀도 인사를 하는지, 흔들리는 긴 머리로 한참을 바라본다.
허전한 걸까? 보고 싶은 걸까? 그리운 걸까?
무릎을 꼭 껴안은 채 앉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촤르르 흘러내린다. 닫힌 창문은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다. 아니, 바람을 대신해 그녀를 안아주고 있다. 지금 그녀는 바람처럼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저 멀리 날아갈 것 같던 하얀 종이는 얼마 못 가, 낯설지 않은 길 위로 툭 떨어진다. 바람이 데려와 준 그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녀는 그 때 그 사람처럼 다시 오지 않을 걸 알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린다. 커피 향기가 그녀를 감싸고, 오랫동안 떠나지 않는다. 바람 냄새, 커피 냄새가 섞여, 마치 내 몸에서 나는 살 냄새가 되고, 그녀는 싫지 않은 듯 커피 잔을 더 꽉 안는다. 그 때 잡지 못한 그의 손을 다시 놓치지 않을 것 처럼.
또 한 번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