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치레

약을 삼키며 쓰는 글

by 창문밖일요일

잔병치레가 잦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아팠지만, 그 주기가 긴 편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동반한 환절기 몸살을 연례행사 정도로 생각했다. 그것은 한 달 지출을 생각할 때, 따로 빼놓는 휴대폰 요금, 보험 납부료, 넷플릭스/유튜브 구독비와 비슷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고정 지출비다. 하지만 근 몇 개월 간 나는 질병과 관련해서 나도 모르게 가입한 요상한 서비스가 많은 것 같다. 계좌에서 낯선 거래처가 내 돈을 빼갔음을 불현듯 알아차리는 것처럼, 나는 며칠 전에 고정비 이상으로 자주 아픈 나 자신을 알아차렸다.


뭐 어떤 상관관계를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입사 후 몇 개월 간의 데이터로 충분히 여러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인과관계를 확실히 할만한 근거는 없다. 꾸준히 규칙적인 삶을 살기에는 아직 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기는 하다.


IMG_7896.JPG 그래도 돈을 버니 약값이 아깝거나 그렇지는 않다~ 이거 완전 병 주고 약 주고.


지난 6개월 동안 나의 병력을 돌아보자면,

지난달에는 코로나인줄 알았는데 그냥 몸살이었던 시기가 있었고,

이번 달에는 그냥 몸살인 줄 알았는데 코로나였던 시기가 있었다.

병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작년 11월과 올해 초에는 아래쪽 사랑니 양쪽이 번갈아가면서 말썽이었다.

회사에 막 입사한 작년 10월에는 신고식이라도 하듯 감기에 걸렸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장염에 걸려 회사 변기를 잡았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대망의 지난주, 염증으로 인해 귀가 땡땡 부어올랐다.


날카로운 칼로 귀 근처를 후비는듯한 고통이 느껴져 한 밤 중에 잠에서 깼다. 약을 먹기 위해 새벽 4시에 밥을 차리는 나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고, 사랑니 통증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몇 개월 전이 떠올랐다. 아직 어두운 바깥을 바라보며, 내가 자주 아픈 사람이 되었음을 인정했다.


나의 귀에는 작은 구멍이 있다. 이루공이라고 부르는 이 구멍은 전 세계 인구의 5%만이 가지고 있는 '덜' 진화의 상징이다(확실하지는 않다). 한창 자기애가 넘치던 청소년기에 나는 이 구멍이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 4년 전, 이 구멍이 나를 배신했다. 이 구멍은 균이 오가는 통로가 되어 고름을 쌓게 만들었다. 땡땡 부은 귀는 아팠고, 그 당시 다니던 이비인후과 원장님은 고름을 짜는 일에 지나치게 열정적이셨다. 빌어먹을 이루공. 한쪽 귀를 싸맨 붕대의 비주얼처럼 그것은 참 곤란했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였다. 다만 더 강력해졌다. '이제 재발하지 않는구나'라는 안일한 생각이 화근이었나. 하긴 올림픽도 4년에 한 번 열리는데.


IMG_7899.JPG '큰'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면 '큰' 일이 난 것만 같다.


이번 질병이 새삼 느끼게 만든 것은 고통이다. 아프다. 아파서 잠을 못 잔다. 정해진 시간 동안 주어지는 고통을 참는 것에 나는 꽤 능숙하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이 수면 시간까지 침범하는 것은 심각한 삶의 질의 저하를 야기한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 지인들과 서로 인사말처럼 전하던 이 말이 피부로 느껴졌다. 특히 땡땡 부은 왼쪽 귀의 피부로.


지금껏 그다지 심각하게 아픈 적이 없었기에,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픈 것을 어느 정도 즐겨왔다. 그러니깐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찾아오면 즐기려 했다. 몸살 기운이 오면, '쉴 때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푹 쉬었다. 지금까지는 원하면 원하는 만큼 푹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두려울만한 육체적 고통도 크게 없었다. 어쩌면 내 앞으로의 인생에 남은 것이 마음 놓고 푹 쉴 수 없는 빡빡함과 점점 더 극심해지는 육체적 고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깊은 우울감을 주지만, 동시에 내게 필요한 결론을 준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


초등학생 때 감기에 걸려 골골대고 있는 나를 간호해 주시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픔도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거야. 감사한 마음으로 어서 회복하렴"

그 말을 듣고 이보다 살아있을 수 있나 싶었다. 그때도, 지금도 감사하게도 나는 살아있다. 조금 더 잘 살아있고 싶기에, 빨리 회복해서 면역력을 키워야겠다. 고정비를 넘어선 아픔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상에 가장 짙은 먹구름을 칠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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