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0.
그린델발트, 스위스
그린델발트에 도착한 지 5일째다. 다들 장기숙박을 하기엔 인프라 면에서 인터라켄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는 경치 하나만을 생각하며 그린델발트에서만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그린델발트는 확실히 경치는 좋지만 아무것도 없긴 했다. 굉장히 작은 마을이었고, 상가들은 몇 블록 되지 않는 메인 도로를 따라서만 위치해 있었다. 주택들도 경사면을 따라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었고, 높은 건물은 보기 힘들었다. 기차역은 있으나 다른 동네로 가려면 항상 인터라켄을 통해서 환승하여 가야 했다. 하지만 눈 덮인 설산과 아기자기한 목조주택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이 모든 걸 감내할 만큼 아름다워서 머무르는 동안 작은 마을이라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린델발트에 오기 전 그린델발트 물가가 살인적이라 뭐 하나 사 먹으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한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하지만 막상 식당들을 가보니 다른 유럽 물가랑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아 우리는 보통 하루에 한 끼는 식당에 방문하여 식사를 하였다. 이곳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꼭 보게 되는 상황이 있다. 웨이터와 손님들이 서로 아는 사이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 처음에 그런 모습을 목격했을 땐 우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별 감흥 없게 지나갔으나 식당에 갈 때마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니 신기하였다.
생각해 보면 이 동네에는 식당이 몇 개 없고,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항상 몇 개 안 되는 식당을 번갈아가며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땅도 좁은데 우리나라처럼 아파트가 있는 게 아니라 다들 주택에서 생활하여 면적당 인구도 적어 웨이터 입장에서도 매일 똑같은 사람들이 식당을 방문할 테니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서양권 특유의 스몰토크 문화까지 겹쳐질 것이니 여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웨이터들은 서로 알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좋아 보였다.
20살 대학생 시절, 편의점 아르바이트 할 때가 떠오른다. 방학을 맞아 집 근처 아파트 단지 안의 편의점에서 평일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주거지역의 늦은 시간 특성상 항상 오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었다. 동생이랑 와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을 사가는 고등학생, 매번 취해와서 소주 한 병만 사가는 아저씨, 껌을 좋아하시던 할머니. 특히 담배종류는 항상 똑같은 담배를 가져가는 사람이 많아 편의점 밖에서부터 담배손님이 보이면 미리 손님이 사가는 담배를 꺼내놓기도 했었다.
그 편의점에서 방학 중 2달 정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오는 손님들 얼굴과 특징을 다 자연스레 외우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손님들 또한 당연히 나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취자들에게 일방통행으로 자신의 잘 나갔던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제외하곤 사적인 대화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게 당연한 게 맞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언젠가 SNS에서 식당의 혼밥 하는 단골손님을 잡는 방법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주 오시네요 하고 말 걸고 아는척하면 다시는 그 손님을 보지 못할 것이고, 조용히 계란프라이 같은 작은 서비스만 하나 챙겨주면 꾸준히 단골로 식당을 방문할 것이라는 글이었다. 당시 그 글을 봤던 나는, 나도 손님의 입장에서 그럴 것 같아 공감하고 넘겼던 글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회가 너무 척박하게 바뀌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 피곤해지기 시작한 시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