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5.
파리, 프랑스
한국에서 신혼여행 계획을 짤 때 꽤나 깊이 고민했던 일정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어디에서 보내냐는 것. 혼자 이것저것 알아보고 도시별 장단점을 비교해 가며 고민해 봐도 여행 중 빅 이벤트가 될지도 모를 일정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었다. 계획은 내 담당이라 여기저기 후보지를 간추리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그냥 파리에서 보내는 게 어떠냐 가볍게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그냥 파리에서 보내기로 했다.
파리에서의 일정은 크리스마스 직전에 도착해 새해 직후 빠져나가는 것. 유럽 여행의 마지막 도시가 될 예정이다.
이미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 도시들의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돌아다니며 한국을 출발할 때 기대했던 크리스마스마켓에 대한 로망은 없어져있는 상태다. 사실 크리스마스마켓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렘이나 여행지에서 새롭게 할 콘텐츠들에 대한 기대감 역시 무뎌져있는 상태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빅 이벤트가 될 줄 알았던 크리스마스는 여행의 피로감과 귀찮음이 쌓여 그냥 맛있는 거 하나 먹고 산책하고 숙소에서 쉬는 날이 되었다.
검색하면 나오는 훌륭한 식당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예약이 다 차 있을 거라 예상한 우리는 숙소 근처 골목에 있는 양식집에서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이기로 결정했다. 번화가를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간 우리는 한국에서와는 다른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임에도 불구하고 가게들 문이 다 닫혀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엔 사람들이 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놀러 다니니 식당, 카페, 놀거리 등 대부분의 매장 매출이 주말보다 올라갈 것이라고 판단해 닫기는커녕 매장 운영을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한다. 우리 부부 역시 크리스마스만 되면 밖으로 나가 외식을 하고 놀러 다녔는데, 항상 매장에 들어갈 때마다 일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 일하는 게 매출을 위해선 당연하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같이 했었던 것 같다. 과연 그게 당연한 것이었을까?
비단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설이나 추석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필수 직종을 제외하곤 그런 날엔 다 같이 쉬면 안 되는 것일까? 물론 사업자분들의 매출 역시 중요하다. 시급으로 일하는 직원들 역시 그날 할 것 없이 집에 있을 바엔 나와서 조금이라도 더 버는 것이 좋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일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으니 우리도 당연히 일해야지 하는 사장님들도 있을 것이고, 꽤나 높은 비율의 직원들은 그런 날들은 쉬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파리의 골목골목마다 셔터가 내려가 있는 매장들을 보니 뭔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한 끼 외식을 할 매장의 선택지가 줄어든 것뿐이었지만 우리나라였다면 일하고 있었을 직원들이 각자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그냥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우리에게 서빙해 주던 한창 놀고 싶었을 어린 친구들에게 들었던 안타까운 마음이 투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장원리 다 모르겠고 그냥 이런 날은 다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